평생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지만, 그것이 국가의 교육제도 안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1996년 5ㆍ31 교육개혁 흐름 속에서 평생교육제도의 구체적인 틀이 정책화되었고, 1999년 평생교육법이 제정되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1997년 외환위기와 고용구조 붕괴라는 역설이 숨어 있다. 당시 '유연한 고용'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 일상화되었고, 평생교육이 재고용을 위한 핵심 고리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전문용어로서의 평생교육은 생애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교육의 총체를 일컫는다. 평생교육은 크게 초기교육(initial education)과 계속교육(continuing education)으로 나누어진다. 아동청소년기 학교교육을 초기교육이라고 하며, 직업세계로 진입한 이후 삶과 노동을 병렬적으로 지원하는 교육의 총체를 계속교육이라고 한다. 인생을 80세까지로 보면 지금까지의 교육은 20세를 전후한 인생의 초기교육 단계에 집중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약 30조원에 달하는 국가교육예산 역시 여기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학교 졸업 이후 평생고용이 가능했던 시절에는 그래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경제위기 이후 일상화된 반고용 혹은 불완전고용의 장기화라는 구조적 문제는 인생 후반기의 고용과 교육의 새로운 순환구조를 요청하게 되었고, 대학을 졸업한 성인들의 취업 및 재취업을 위한 교육에 유례 없이 긴 시간과 높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요하였다.
한 예로 작년 평생교육 통계조사에 따르면 경기 불황으로 인해 전체적인 평생학습 참여율은 약간 낮아졌지만 직업교육과 관련된 부문은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교육 개념의 백미는 국가교육체제가 초기교육 중심의 절름발이 정책에서 탈피하여 계속교육과의 균형 위에 두 다리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어떻게 이 두 교육체제를 선순환적으로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하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미리 경험한 유럽은 2000년 리스본 협약을 통해 2010년까지 유럽 전체 교육시스템을 평생학습체제로 혁신하기로 약속하였다. 지금 유럽연합 회원국은 그 혁신의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일차적 결실이 2010년, 즉 내년이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점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 평생교육정책은 지난 10년 동안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십수년 동안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개발해 왔다. 문해교육, 성인인문학습, 학습도시, 학점은행제, 평생학습계좌제, 평생학습중심대학 등 유연하고 탄력적인 학습지원장치들을 개발했다. 이러한 제도적 모형은 작년에 개최된 유네스코 주관 아시아ㆍ태평양 성인교육대회에서 48개 아시아ㆍ태평양 국가들의 성공적 미래 모형으로 제시되었다. 이 가운데 평생학습중심대학 개념은 향후 10년 동안의 대한민국 교육정책 향방을 바꿀 핵심의제다. 앞으로 대학을 한 번만 다닐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대학의 역할은 '학위'를 제공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앞으로는 지속적으로 전문가 계속교육 등을 통한 '자격'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기능에 주력할 것이다. 자격은 교육과 고용 사이를 연결하고 그 역량을 표현해주는 유연한 신호기제라는 점에서 향후 고등교육의 판도를 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현재 과잉 공급 상태인 대학의 3분의 1 정도를 평생학습중심대학으로 전환해 이 대학들이 '졸업 후 다시 돌아온' 노동학습자들의 평생학습과 역량 개발을 위한 국가평생교육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편하면 좋겠다. 시간제 학생에게 유리한 학사관리제도는 물론 성인을 이해하는 교육구조와 학습지원체제를 선도하는 대학들은 초기학위를 넘어 제2, 제3층위의 고등교육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지금 고등교육은 위기이자 기회로 통하는 갈래길에 서 있다.
[한숭희서울대 교육학과 교수ㆍ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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