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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츄에이터의 모습. 일반인들은 따로 용어 정리가 돼있지 않는 한, 기사를 보고 액튜에이터에 대해 알기가 쉽지 않다. | 과학사랑방 과학 기자의 고충 중 하나가 각종 전문용어로 무장한 보도자료와 싸우는 일이다. 1월 23일자 기사인 ‘신개념 비만 치료 원천기술 확보’에는 NADH, AMPK 등의 의·생물학 용어들이 사용됐으며, 2월 4일자 기사인 ‘국산 망원경으로 우주번개 촬영...’에는 액츄에이터, 자이로스코프 등의 단어들이 기자들을 괴롭혔다. 이는 기사를 읽는 독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일 것이다.
사실 각 관련 연구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기자들도 이러한 전문 용어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괴롭기 마련이다. 해당 연구·과학기술 정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 이를 쉽고 정확하게 풀어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언어 체계에 외래어·외국어나 외래 표현 방식이 들어오는 것은 문화 교류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경제 관련 용어와 함께 과학 기술 용어에서 이러한 현상이 자주 보이는데, 이는 본래 우리말에서 없는 용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표기만 한글로 할 뿐이고 외국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원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암호와 같지만 마땅한 대체어가 없어 발음 그대로 적는 경우이다.
특히 과학 기술 용어는 전문적 용어가 많고, 최신 기술 개발, 학문의 업적 등이 외국 위주인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땅한 대체어를 찾기가 어려워서, 혹은 전문성을 부여하기 위해 우리말로 쉽게 바꿔쓸 수 있는 과학 기술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본다.
E-mail과 같이 ‘전자우편’이라는 대체어가 있지만, 외국어와 대체어가 혼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E-mail의 경우 이메일, E메일, 전자우편 등 다양한 표현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
과학기술 용어의 적절한 한글화
사실 외래어의 한글화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Fire Baller-강속구 투수’와 같이 훌륭한 대체어가 존재함에도 그 느낌을 따라잡기 힘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대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impact’의 경우 ‘충격, 영향’ 등으로 대체하면 의미는 통할지 모르겠으나, 그 단어가 함의하는 바를 완벽히 대체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단어들을 그대로 표기하는 것은 글을 다루는 이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satellite’는 인공 위성으로, ‘니치 마켓(niche market)’은 틈새 시장으로, ‘로스 리더(loss leader: 백화점에서 고객 유인을 위해 밑지고 파는 상품)’는 ‘미끼 상품’으로 바꿔 쓴 좋은 사례들을 보면, 과학기술 용어의 적절한 한글화는 모든 과학 콘텐츠 생산자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경우, 과학기술 용어를 포함한 많은 단어들을 자국의 표현대로 바꾸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2000년에 프랑스 경제재무부는 공식 문서에 ‘이메일’ 대신 ‘쿠리에 엘렉트로니크(courrier electronique)’를 쓰도록 지침을 내리는 등 외래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중국에서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 칭하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커우코우커우러'라는 발음도 비슷할 뿐더러 ‘입맛에 맞아 즐길 만하다’는 뜻까지 그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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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는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으로 표시한다. | 우리나라에서도 한겨레신문 스포츠면에서 농구의 ‘리바운드’를 ‘튄공잡기’로 표기하는 등 외래어의 한글화에 대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본 단어의 함의나 말맛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고, 되려는 어색할 수도 있겠으나 나름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과학기술백서 97년판에 의하면 약 63%의 국민이 '과학기술에 관한 지식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어야 이해가 된다'고 말하고 있으며, 약 56%의 국민이 '과학자나 기술자와의 대화를 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가장 적은 젊은 여성의 약 71%가 '과학기술에 관한 지식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답하고, 약 48%가 '과학자나 기술자와의 대화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예를 들어 보자. "포스트 지놈 시대를 대비한 프로젝트로 프로테오믹스, 합맵 프로젝트, 비교 지노믹스 등이 추진되고 있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비전문가들은 얼마나 될까? 물론 이는 과장된 경우지만, 실제 ‘이해할 수 없는 외래어’로 과학 콘텐츠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로봇이나 레이저처럼 이미 한글화된 단어들이나 고유명사, 혹은 그 의미를 정확히 대체할 우리말이 없는 경우에는 마땅히 원어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컴프레서, 프로젝터, 블루투스, 바이오 마커, 자이로스코프, 액츄에이터 같은 단어들은 좀 더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과학자들의 원고는 쓰는 것보다 고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한 언론계 종사자의 농담이 그저 우스개 소리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