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보고서, 어떻게 써야 할까? [싸이컴 공동] 이공계, 표현의 날개를 달아라 (13) 2009년 07월 14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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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전 대리는 학교와 회사를 오가느라 바쁘다. 일주일에 하루는 학교 연구실로 출근을 하고, 주말에도 나가서 실험을 한다. 처음 마케팅팀으로 옮겼을 때는 다소 어리버리했던 전 대리지만, 표 팀장과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한 뒤로는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주제 넘은 말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달은 바가 좀 있습니다. 그런데 이공계 연구실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듯합니다.” “원래 과학자들이 그런 기질이 있긴 하지. 그렇지만 과학자들이 실험이나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나 얻으면 되는 거지, 굳이 남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물론 과학자의 본분은 연구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에겐 과학자 나름대로의 표현 기법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기에 실험 데이터들의 유실이 많고, 실험의 노하우 같은 것들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아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이터 유실을 방지하고,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각자 실험 노트를 쓰게 하는 것 아닌가?” “바로 그겁니다. 저도 석사 때 실험 노트를 써 본 적이 있는데, 사실 처음에 랩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낯설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작정 실험 노트를 쓰라고 하니 무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그저 메모 수준이었지요. 그리고는 한 학기쯤 지나서 절 가르쳐 주던 박사과정 선배가 갑자기 외국의 랩으로 떠나게 되어 제가 그 실험을 이어받게 되었는데, 선배 실험 노트를 처음 본 순간 제게 든 생각은 ‘암호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데이터는 잔뜩 들어 있는데, 도대체 그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데이터를 이해할 수 없으니, 결국 저는 선배가 넘겨주고 간 실험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이미 했던 실험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겨우 그 데이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만약 그 선배의 실험노트가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형태였더라면, 아마 전 결론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을 테지요.” “하기야 그간 학생들이 실험하다가 중간에 나가버리게 되면, 그동안 진행했던 실험들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경험이 종종 있었지. 난 그걸 학생들의 역량 탓이라고 생각했었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실험 노트와 보고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중요한 사항들이 빠짐없이 기재되어 있다면 불가피하게 다른 이가 실험을 이어받아 하게 될 때,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래서 제가 일단 실험노트에 기록할 사항들을 넣어 샘플을 만들어 왔습니다.” 전이공은 자신이 만들어온 실험 노트 샘플을 교수에게 건네 주었다.
“음, 이 정도면 거의 모두 들어간 것 같은데. 여기에 실험 조건란을 하나 더 첨부하게. 때에 따라서 환경 변화를 예민하게 반영하는 실험의 경우에는 실험할 때의 기온과 습도, 비가 왔거나 맑거나 하는 기상 상태에 의해서도 결과값이 달라지는 수가 있으니 그것도 기록하는 게 좋아.” “아, 그것도 고려했어야 하는데, 제가 실수했습니다.” “이참에 아예 랩 미팅시간에 실험 노트를 한 번씩 훑어봐야겠어. 생각난 김에 자네가 실험노트 항목을 다시 정해서 아예 랩원들 수만큼 제본하게. 그리고 한 실험이 끝날 때마다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할 테니, 그 항목도 정해주고.” “네, 알겠습니다.”
전이공의 지도교수는 한 번 생각나면 밀어붙이는 타입이어서, 실험노트가 도착한 다음날부터 랩 미팅 시간마다 학생들의 실험 노트 검사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노트를 쓰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전이공은 랩 학생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찍히고 말았다. “형, 도대체 교수님께 무슨 말을 드린 거예요?” “그래요, 오빠. 가뜩이나 실험도 많은데 굳이 이런 거까지 써야 해요? 귀찮게시리.” “워워, 진정들 해라. 지금은 내가 미운 거 같아도 다 따라하다 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날이 올 테니 말이다.” “쳇,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오는 거예요?” 학생들은 투덜거렸지만, 전이공은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나중에 저널에 투고할 논문을 쓰고, 졸업논문을 작성할 때 미리미리 작성해둔 실험노트가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후배들의 볼멘 소리쯤은 귓등으로 넘겨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몇 년 후, 졸업이 가까워졌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꼼꼼하게 써 놓은 실험 노트의 덕을 보게 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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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2009.07.14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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