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슈 진단 독일 자동차회사 BMW의 헤르베르트 디스 구매담당 사장은 최근 방한해 "내년부터 생산할 전기자동차에 2차 전지를 납품할 업체로 삼성SDI(한국)·보쉬(독일) 합작사, SB리모티브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LG화학이 미국 GM이 생산할 전기차 '시보레볼트'에 2차 전지를 납품키로 합의한 이후 두 번째 개가.
자동차용 2차 전지가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자동차 연비규제 강화로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의 수요가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이어 국산 배터리 구매가 성사된 것은 과학기술사에 기록될 한국 기술력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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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W 납품에 성공한 SB리모티브의 자동차용 리튬이온전지 | 이전까지 2차 전지 시장을 주도해왔던 것은 일본이었다. 파나소닉, 도요타, 닛산, 미쓰비시 등 일본의 IT, 자동차업체들은 그동안 2차 전지와 관련된 원천기술을 대량 확보해왔다. 그 결과 일본은 휴대전화, 노트북 등의 소형 IT 제품에 사용하는 2차 전지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올 들어 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한국 업체들이 소형 배터리 기술을 활용, 효율이 높은 자동차용 배터리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동차 배터리 시장 놓고 기업들 '합종연횡'
자동차용 2차 전지는 우선 오래 가고, 가벼워야 한다. 2차 전지의 단점인 폭발위험도 극소화해야 한다. "삼성 SDI의 2차 전지가 경쟁사 제품보다 용량이 크고,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BMW 헤르베르트 디스 사장의 발언은 국산 제품의 품질이 일본 제품의 품질을 넘어섰음을 말해준다.
현재 세계는 2020년 150억 달러 시장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2차 전지 시장을 놓고 업체 간의 합작, 또는 전략적 제휴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업체들은 주로 합작 형태로 기술을 개발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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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튬이온전자 개발을 위한 일본 자동차, 전자 업체의 합작 현황(삼성경제연구소 자료) | 전자 업체인 파나소닉은 2차 전지를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지목하고, 2차 전지를 생산하던 산요를 인수했으며, 도요타, 닛산, 미쓰비시 등 자동차 업체들은 친환경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2차 전지의 안정적 조달을 위해 다른 전지업체들과 합작사를 설립함으로써 경쟁력 우위를 유지해나가려고 노력해왔다.
반면 미국, 유럽 등에서는 전략적 제휴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2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를 출시할 예정인 미국의 포드는 존슨 컨트롤스(미국) 및 사프트(프랑스)와 공동으로 전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독일의 보쉬와 2차 전지 세계 2위 업체인 한국의 삼성SDI는 자동차용 배터리 공동 개발을 위해 지난해 8월 한국에 합작사인 SB리모티브를 설립했는데, BMW에 배터리 공급 계약이 확정된 것은 양사의 기술협력을 통해 이룬 개가라고 할 수 있다.
경쟁구도, 기업 차원에서 국가 차원으로...
삼성경제연구소는 2차 전지를 둘러싼 경쟁구도가 현재 기업 레벨에 머물고 있으나 향후에는 국가 간 경쟁으로 확산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얼마 전까지 2차 전지 시장은 주 용도가 IT 제품이기 때문에 세계 시장을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3국이 주도해왔다.
그러나 2차 전지 시장이 자동차 분야로 확산되면서 선진국들은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자동차업체, 전지업체, 대학, 연구소 등 22개 기관이 참여하는 '올 저팬(All Japan) 체제'를 발족하고, 전기자동차 주행거리를 오는 2020년까지 현재의 3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향후 7년간 210억 엔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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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튬 최대 매장국인 볼리비아를 놓고 진행되고 있는 각국 자원외교 현황(삼성경제연구소 자료) | 미국 오바마 정부는 2015년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100만대까지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첨단 전지 개발에 24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3M, 존슨 컨트롤스 등 14개사는 '첨단 수송용전지 제조사 연합'을 결성하고, 공동 R&D와 수탁 제조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시 정부 차원의 기술개발과 로컬 전지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시작했다. 국가 기술개발 프로젝트인 '836계획'에 따르면 자동차용 2차 전지를 포함시켜 국가 차원의 기술새발을 독려하는 한편, 중국 내에서 생산되는 IT 제품에 중국산 전지 탑재를 권고하는 등 중국 전지업체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차 전지의 원료인 리튬 매장량이 세계 3위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원확보를 위해 전 세계 매장량의 절반 가량을 확보하고 있는 볼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과 자원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원료를 내세워 경쟁국들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기술력에 있어서는 미국과 유럽 자동차업체와 손잡은 한국, 그리고 자국 내 기업끼리 뭉친 일본의 양강 구도로 정리된다. 자동차 배터리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업체와 전자업체 간의 합종연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가장 많은 원료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래 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원천기술을 더 많이 확보하고, 또한 원료(리튬) 확보를 위해 볼리비아 등 남미 국가들과 자원외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견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