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75> 한국전쟁 다룬 소설
민족·이념 중심에서 일상·자본의 시각으로…분단소설, 시대 따라 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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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전쟁과 분단을 다룬 소설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 소설의 개정판이 출간되거나 새 작품이 발표되기도 한다. 재미작가 김은국의 장편 『순교자』 개정판이 나왔고, 대표적인 분단 작가 김원일씨는 18년간 쓴 역작 『불의 제전』을 새롭게 선보였다. 한국전쟁 관련 소설을 문학평론가 정호웅·김미현씨의 도움을 받아 살펴봤다.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작품들이다.
신준봉 기자
한국전쟁은 한국사회를 과거와 철저하게 단절시켰다. 문학평론가 정호웅(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인명 피해, 경제적 토대의 붕괴, 전통적인 규율과 가치관의 동요, 이산(離散)과 고향 상실, 분단의 고착 등으로 한국사회는 근본부터 무너졌다는 것이다.
문학사회학은 문학이 현실을 반영한다고 가르친다. 굳이 학문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문학이 체험을 토대로 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한국전쟁 같은 일대의 사건은 되풀이해서 소설로 쓰여 왔다. 더구나 작가들 자신이 직접적인 전쟁 피해자인 경우 소설을 통한 고통의 형상화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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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삶의 터전은 허물어지고 전통 규율과 질서는 해체됐다. 현실을 먹고 자라는 문학은 당연히 이를 반영했다. 하지만 분단문학은 전쟁과의 시간적 거리에 따라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며 변화해 왔다. [연합뉴스] |
| 창비에서 출간된 『새 민족문학사 강좌』에 따르면 전쟁 직후 남한의 문단은 월남작가들로 점령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황순원·정비석·선우휘·이범선·장용학·이호철·최인훈 등 문학사의 윗자리에 놓이는 상당수 문인들이 월남작가였다. 이들은 ‘현대문학’ ‘사상계’ 등 전후 생겨난 매체를 통해 작품활동을 했다.
1960~70년대 분단문학의 주요 성과로는 황순원의 장편 『인간접목』『나무들 비탈에 서다』, 최인훈의 장편 『광장』『회색인』, 이호철의 단편 ‘탈향’ 등이 꼽힌다. 전쟁의 그늘이 짙게 남아 있었다.
80년대 들어서는 전후 한국사회를 강력하게 규율해온 반공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대표적이다.
90년대 들어서는 전쟁 시기의 일상을 세밀하게 복원한 박완서씨의 장편들이 잇따라 나온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이다. 중진 소설가 임철우의 장편 『그 섬에 가고 싶다』도 이 시기에 쓰여졌다.
2000년대 분단문학은 뚜렷한 차별화를 보인다. 평론가 김미현(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전쟁 미체험 세대들이 발표하는 소설들은 민족이나 이념,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일상·욕망·자본의 입장에서 북한을 보다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배수아의 단편 ‘은둔하는 북(北)의 사람’, 이기호의 단편 ‘간첩이 다녀가셨다’, 이응준의 장편 『국가의 사생활』 등을 읽어볼 만한 ‘새로운 분단 소설’로 추천했다. 최근 중진 소설가 이경자(62)씨는 전쟁의 상처와 전후 사회상을 여섯 살 소녀의 성장기를 중심으로 풀어낸 장편 『순이』를 펴내기도 했다.
50년 1~10월, 월북한 아버지 둔 가족의 애환 불의 제전 전 5권 김원일 지음, 강, 403∼453쪽, 각 권 1만2000원
소설가 김원일씨는 이호철씨와 함께 한국전쟁·분단 문제 등에 천착해온 대표적인 작가다. 1942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그는 6·25 발발 직후인 50년 8월 남로당 간부였던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어머니·누나 등과 함께 대구에서 상경해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다. 김씨의 아버지는 전쟁 중 끝내 월북한다. 이런 실존적인 전쟁 체험은 김씨 문학의 뼈대를 이룬다.
장편 『불의 제전』은 스케일과 소설적 총체성 측면에서 김씨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50년 1월부터 10월까지를 시간 배경으로, 경남 진영과 서울·평양 등을 오가며 월북한 아버지를 둔 일가족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김씨는 『불의 제전』을 20대 초반에 구상했다. 80년부터 쓰기 시작해 ‘문학사상’ ‘학원’ 등 발표 지면을 바꿔가며 18년간 집필한 끝에 97년 7권으로 완간했다. 최근 두 권 분량을 덜어낸 개정판이 출판사를 바꿔 나왔다. 김씨는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표현이 어색한 부분, 느슨한 대목 등을 덜어냈을 뿐 새 삽화를 추가하거나 해석을 달리하여 고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인민군이 지배한 서울…50년대 풍경이 생생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웅진씽크빅, 375쪽, 1만원
1931년 지금은 북한 땅인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박완서씨는 전쟁통에 친오빠를 잃었다. 북한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다가 임진강을 건너기 직전 탈출한 경험도 있다. 이런 전쟁 체험은 박씨의 여러 작품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70년 등단작인 장편 『나목』,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 등이 그런 작품이다. 95년에 발표한 장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92년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잇는 후속작으로 자전적 냄새가 폴폴 나는 작품이다.
소설은 박씨가 스무 살 되던 51년부터 결혼하는 53년까지 인민군 치하의 서울살이 경험을 풀어낸 것이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오빠를 대신해 올케와 함께 먹고살기 위해 남의 집 담을 넘었던 경험, 강압에 못 이겨 인민군 위문공연을 보러 갔던 일, 미군부대 PX 초상화부에서 박수근을 만났던 일 등 살풍경한 50년대가 박씨 특유의 명쾌한 어조, 이야기꾼적인 재능에 의해 소설 속에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국군 아들 둔 외할머니, 빨치산 아들 둔 친할머니 장마 윤흥길 지음, 민음사, 377쪽, 1만1000원
장편소설 『완장』의 작가 윤흥길씨가 1973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아들이 국군 소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할머니 집에 빨치산 아들을 둔 친할머니가 얹혀 사는 바람에 벌어지는 둘 사이의 대립과 갈등, 분노와 화해의 드라마를 초등학교 3학년 손자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장마가 지루하던 어느 날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아 든 외할머니가 공산당에 대한 저주를 쏟아내자 친할머니가 노발대발한다. 친할머니는 점쟁이 예언만 믿고 아들이 살아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고 대신 구렁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졸도한다. 외할머니가 구렁이를 몰아낸 후 둘은 화해하게 되고 장마는 그치지만 친할머니는 곧 숨을 거둔다.
평론가 정호웅 교수는 “죽음의 기운이 장마철 습기처럼 온 세상을 가득 채운 상황에서 전쟁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의 심리를 실감나게 묘사하면서도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려는 마음, 같이 아파하는 연민의 마음이 전쟁 중에도 살아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전쟁 직전 평양서 목사 12명이 총살 당했는데… 순교자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문학동네, 328쪽, 1만1000원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재미 작가 김은국(1932∼2009)의 대표작. 1964년 미국에서 『The Martyred』란 제목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0여 개국에 번역됐다. 65년 유현목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고 여러 차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소설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평양에서 공산군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된 목사 14명 중 12명이 총살당하고 2명만 살아남은 사건의 진상을 국군 대위가 파헤치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이 대위의 상관인 장 대령은 목사 처형 사건을 대북 선전전에 활용하려 하지만 살아남은 생존 목사의 입을 통해 드러난 진실은 희생된 목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에 투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 때문에 미국 뉴욕 타임스는 “도스토옙스키, 카뮈의 문학 세계가 보여준 위대한 도덕적·심리적 전통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순교자』는 수필가 장영희씨의 아버지인 서울대 장왕록 교수에 의해 64년 처음 번역됐다.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은 도정일 경희대 교수가 자신의 78년 번역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국군에 붙잡힌 체험 녹여내 남녘사람 북녁사람 이호철 지음, 민음사, 350쪽, 9000원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소설가 이호철씨는 56년 단편 ‘나상(裸像)’으로 등단했다. 한국전에 국군으로 참전한 형제가 나란히 인민군 포로가 돼 강원도 통천에서 우연히 만나는 얘기다. 이 소설은 이씨의 실제 체험을 뒤집은 것이다. 이씨는 ‘나상’에서 그려진 것과는 정반대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국군 포로로 붙잡혔다. 이런 실제 체험을 왜곡하지 않고 고스란히 재현한 작품이 1996년에 출간한 연작장편 『남녘사람 북녁사람』이다. 전쟁 후 30, 40년이 지나서야 이씨는 경험을 왜곡하지 않고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책에 실린 첫 단편 ‘세 원형 소묘’에는 남북이 막 갈라지려던 시기인 47년 북한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남에서 온 사람들’ ‘칠흑 어둠 속 질주’ 등 나머지 단편 4편에는 인민군에 징집돼 밤기차를 타고 전선에 투입되는 장면, 국군 포로로 붙잡혀 생사를 걱정하던 상황 등 50년 7월부터 10월까지 이씨의 전쟁 체험이 소상히 담겨 있다. 10여 개국에 번역 소개된 ‘분단 작가’ 이씨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년 고정간첩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 짚어 빛의 제국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391쪽, 9800원
전복적인 상상력과 SF·추리·판타지 등 장르 문학 코드 등을 앞세운 개성 있는 문학세계로 폭넓은 인기를 누려온 소설가 김영하씨의 2006년 장편소설. 20년 넘게 남한에서 암약한 고정간첩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엄숙한 역사물이기보다 스파이물에 가깝다. 소설의 주인공은 평양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재학 중 4년간 대남공작원 교육을 받고 22세 때인 1984년 서울로 남파된 스파이 김기영.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권에 잠입한 그는 졸업 후 영화 수입업을 하며 남파 간첩들에게 그럴듯한 전사(前史), 즉 남파되기 직전까지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북에 있는 그의 후원자가 95년 힘을 잃은 후 10년 넘게 간첩 아닌 평범한 소시민 생활을 하던 중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북으로 귀환하라는 갑작스러운 e-메일을 받는다.
자본주의 체제에 철저하게 동화된 듯하지만 ‘생득’이 아닌 ‘학습’을 통한 것이라는 점에서 방외인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인생 궤적을 통해 80년대부터 21세기 초까지 한국사회의 변화를 훑는 새로운 색깔의 분단소설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