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신선하다, 동물 조각에 핀 형형색색 곰팡이
[중앙일보] 입력 2015.11.13 01:49 수정 2015.11.13 02:07
윤진영 ‘우월의 역행’ 대상
삶과 죽음 경계에 선 날것의 생명
거대한 자연 속 힘의 흔적 시각화
생물학 전공한 46세의 사진작가
“오래가는 게 목표인데 동력 얻어”
2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
12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로비에서 열린 제37회 중앙미술대전 시상식장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우수상 없는 단독 대상의 영예를 거머쥔 윤진영(46)씨는 “나이도 부담됐고 체면 구길까봐 지원할 때 망설였다”고 털어놨다. 많이 생각하고 느리게 작업하는 자신의 스타일에 스스로 지쳐갈 즈음, 까마득한 후배들과 경선한 건 약이 됐다. 대상을 타고 나서 그는 “오래가는 게 목표인데 한참 나를 밀어줄 동력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윤진영씨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사진을 했지만 일찌감치 예원중·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식물 키우기를 좋아했고 재료공학자였던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전자현미경을 다루며 놀만큼 과학적 태도를 지녔다. 생선 내장을 해부해 파편화한 작품이나 식재료를 다룬 그의 전작들은 생명의 근원을 파헤쳐 그 너머에 있는 생명력의 본질을 손에 잡고 싶은 열망의 표현이었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고 회피하는 곰팡이를 소재로 잡은 건 주효했다. 곰팡이를 키우는 샬레(세균 배양용 용기)는 그에게 갤판(물감 팔레트)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색과 형태가 피어나는 곰팡이를 동물 조각에 입힌 배지(곰팡이 밥) 위에 놓아 그 변화를 지켜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은 그에게 명상이자 참선이었다. 거대한 자연 안에서 한 개체에 가해지는 힘의 흔적을 시각화하며 그는 ‘우월의 역행’이란 제목을 붙였다. 우월하다고 인식된 것들을 거슬러 오르는 필연과 우연의 반복 속에서 그는 경이로운 풍경을 발견했다. 과학과 예술이 접붙여진 화면은 사람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섭리를 보여준다. 준비된 대형 신인의 발굴이 창간 50주년을 맞은 중앙일보 주최의 민전(民展)에 잔치 분위기를 돋운다.
올 중앙미술대전에는 윤 작가 이외의 선정작가인 김성수·김승한·노영미·박찬배·윤석원·임영주·전미래·전현선·전혜림씨의 신작들도 나왔다. 전시는 21일까지. 02-2031-1919.
◆시간의 밑줄 사진전=중앙미술대전과 나란히 마련된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기념 ‘시간의 밑줄’은 지난 50년 동안 중앙일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사진들 중 500여 장을 선택해 정리한 ‘아카이브’전이다. ‘중앙일보 이미지로 본 한국의 50년: 1965~2015’란 부제처럼 사진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는 일절 없이 오로지 감각으로 한국 현대사의 순간순간과 공감대를 이루는 특이한 공간이다.
전시를 기획한 정현 인하대 교수는 “신문 사진의 한계인지 한국 사회의 특징인지 유독 재난과 외침, 광장과 국가폭력, 재개발과 신도시, 애도와 갈등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신인섭 중앙일보 영상데스크 기자는 “극적이지는 않지만 힘든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모습, 그 B컷 사진은 큰 소리 없이도 도도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고 해설했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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