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과학자, 어떻게 데려왔나
과학기술 50년(3) 파격적 대우와 연구 자율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이룩한 업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해외 과학기술자의 유치 사업이다. 해외 과학자의 영입으로 연구 체계를 갖춘 KIST가 안착하면서 1970년대에 들어 해외의 한국 과학기술자들이 귀국하기 시작했고, 그 경향은 1980년대 들어와 더욱 강화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면 두뇌유출(brain-drain)이 한국에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고도성장을 성장을 거듭한 한국 경제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이 뒷받침된 것이기는 하지만 KIST와 이를 모델로 해서 70년대 연이어 세워진 정부출연연구소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
KIST의 이 같은 성공 사례는 국제적인 관심 대상으로 떠올라 해외 연구 논문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 환경이 바뀌면서 97년 외환 위기 이후 다시 고급 과학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KIST 연구원 확보가 당면과제
KIST가 설립되자 연구원을 확보하는 문제가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최형섭 초대 소장은 산업계의 요구에 맞춘 계약연구를 하려면 경험 있는 연구자가 필요한데, 대학교수들을 데려오면 대학교육이 큰 지장을 받게 되므로 해외에 있는 과학기술자들을 유치하기로 마음 먹었다. 1950년대에 유학 간 사람들 가운데 이런 조건에 맞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지만 이들을 어떤 조건으로 유치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최형섭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pp.54~55)
KIST가 해외 과학자 유치 작업에 나서자 주변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당시 국내의 현실에 비춰볼 때 해외 과학자 유치에 긍정적인 여건은 전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68년 4월 정부 차원에서 펴낸 해외유학생에 대한 첫 보고서에 따르면 1953년부터 1967년 3월말까지 해외유학자격 인정 시험을 통과한 유학생은 7,958명이었고, 유학생의 86%가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유학생 중 귀국자는 12.2%(973명)에 불과했다.
해외에서 학업을 마친 유학생들이 귀국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연구를 계속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국내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산업계는 고급 인력을 쓸 여력이 없었고, 대학교수나 연구원은 일부 대학과 연구소를 제외하고는 급여가 낮아 부업 전선을 뛰어야 할 실정이었다. 국공립연구소는 공무원 처우 규정에 묶여 있어 충분한 대우를 보장하기 어려웠고, 정원 제약으로 채용 인원도 얼마 되지 않았다.
1965년 1만5000원 이상 월급 받는 연구원은 80여명
1965년 전국 연구기관의 보수 실태를 보면, 1만5000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 연구원은 82명에 불과했고, 박사학위 소지자는 88명이었다. 당시 서강대 교수 일부와 원자력연구소의 일부 연구원이 6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았고, 국립대 정교수의 경우 3만원이 못되는 월급을 받고 있었다.
1965년 월 1만5000원의 급여는 한 가구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봉급이었고, 실제로 많은 연구원들이 본업 이외의 부업을 갖고 있었다. 참고로 1966년 당시 대통령의 월급은 7만8000원이었다. (문만용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전임교수 “한국의 ‘두뇌유출’ 변화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역할”)
KIST는 이같은 현실을 감안해 먼저 KIST 연구원은 산업계에 부응하는 연구를 해야 하지만 ‘연구의 자율성을 확립해주고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생활의)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점을 지원자들에게 강조했다. 이에 따라 먼저 집을 마련해주고 당시 국내에는 없었던 의료보험을 미국과 계약해 제공했다. 가족의 항공료와 이사 비용까지 대주었다. 연구원의 봉급은 미국에서 받고 있는 봉급의 4분의 1 정도의 한화로 지급했다. 이 봉급은 물가를 반영하면 당시 국립대학교수 봉급의 3배 가까이 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연구원들이’ 적지 않았다. 연구휴가도 미국보다 절반 정도 기간밖에 안되는 3년마다 1년간 유급으로 준다는 규정을 두었다. 이런 대우는 기존 국내 국공립연구소나 대학 및 기업 연구소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이었다.
KIST는 출발하면서 새로운 연구소의 방향을 명확하게 밝혔고, 3차례에 걸쳐 심층적인 면접을 하는 등 신중하게 연구자 인선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해서 선발한 해외 유치 과학자들은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KIST가 69년까지 유치한 연구원 25명 가운데 22명이 첫 번째 계약기간 만료 후 재계약을 맺고 KIST에 계속 남았다. 1980년까지 다시 한국을 떠난 연구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이 같은 결과는 해외에 거주하던 한국 과학기술자들에게 과거와 다르게 귀국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KIST의 해외 과학기술자 유치 사업이 성공하자 해방 이후 특별한 과학자 유치 정책이 없었던 정부가 팔을 걷어 부쳤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1968년 과학기술처가 수립한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재외 과학기술자의 국내 유치 활용을 강화하기 위하여 국내 연구조건의 개선, 급여의 개선, 연구활동의 자율성 보장 등 제반 유인 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해외 과학기술자의 국내 취업 알선을 제도화한다.”
정부의 해외 과학자 유치 정책 시작
이 같은 방침 아래 해외 과학기술자 유치를 위한 정부예산이 1968년부터 투입되었다. 2년 이상 국내에 취업하여 체재하는 영구유치의 경우에는 KIST의 해외 유치 과학자에게 지원했던 혜택을 거의 똑같이 제공했다. 단기간 강의·자문을 하고 돌아가는 일시유치 과학자에게는 본인의 왕복항공권과 국내 체재비를 지원했다. 사업 첫 해인 1968년에는 영구유치 해외 과학자 5명, 일시유치 과학자 2명뿐이었지만, 매년 그 숫자가 늘어났다. 해외 유치 과학자들은 그들의 일터로 대부분 대학과 연구소를 선택했다.
<표1> 정부의 재외 한국인 과학기술자 유치 실적
<자료 : 문만용 “한국의 ‘두뇌유출’ 변화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역할”>
<표1>에 제시된 수치는 과기처가 나서서 유치한 해외 두뇌들만 집계한 것이다. 여기에는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선발한 인력은 포함되지 않았다. 80년까지 KIST 한 연구소에서만 유치한 해외 과학자가 119명이었다. 따라서 10여개가 넘는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에서 직접 유치한 과학자를 모두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과학자 유치 사업은 1982년부터 정부가 손을 떼고 한국과학재단이 담당했다. 해외 유학생들의 자발적인 귀국이 크게 늘어나자 1991년부터는 영구유치 과학자에 대한 지원은 중단되었다. 90년대 초반에 와서는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두뇌유출이 문제되지 않는 국가라는 해외 연구 보고까지 나오게 됐다.
97년 외환 위기 이후 새로운 해외 유출 문제 부각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국내 고급 인력의 해외유출 문제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60~70년대는 해외 유학생들이 귀국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경험을 쌓은 첨단 기술인력의 해외 이주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된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두뇌유출의 방식도 바뀌게 된 것이다.
매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가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두뇌유출지수는 <표2>와 같다. 1995년 7.53(조사대상 60개국 중 4위)에서 2010년 3.69(42위)로 악화되었다. 2000년대 들어와 이 지수는 5.89~3.74 수준으로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2015년에는 3.98로 44위를 기록하고 있다.
<표2> IMD 발표 한국의 두뇌유출지수 추이 (1995~2015년)
※두뇌유출지수는 0~10의 사이이며, 0은 ‘두뇌유출이 국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침’을 의미하고, 10은 ‘두뇌유출이 국가 경제에 영향이 없음’을 의미함.
일각에서는 세계화 추세와 함께 과학기술인력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해진 상황에서 ‘두뇌유출’이라는 문제보다는 해외의 두뇌들이 국내의 연구진과 함께 과학기술 분야의 초국가적 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두뇌순환(brain circulation)’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해외두뇌의 유입도 크게 확대되고 있어 한국의 두뇌 유출은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고 두뇌유입과 유출의 불균형 상황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 성하운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6.04.0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