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아지는 기계가 있다면? 시험기간 책과 씨름하다가 머리의 한계를 탓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기계, 정확히는 기술의 이름은 다소 어렵다. ‘경두개직류전기자극(tDCS, transcranial Direct Current Stimulation)’. 하지만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9V짜리 전지에 전선 두 개, 또 전선 끝에 작은 전극이 붙어있을 뿐이다. 사용법 역시 간단하다. 두피에 음극과 양극을 붙이고 기계 스위치를 켜면 양극에서 음극으로 전류가 흐르며 뇌를 자극한다. 쉽게 말해 뇌를 약한 전류로 자극해 머리를 좋게 한다는 것이다.
전류를 흘리면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
[그림1] 출처 (GIB)
실제로 머리 좋아지는 기계의 성능을 테스트한 연구팀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로이 카도쉬 교수팀은 뇌에서 수리 능력을 맡고 있는 두정엽이라는 부위에 1~2mA 정도의 약한 전류를 흘려줬다. 전기자극을 받은 사람들은 이전보다 수학 문제를 더 잘 풀어냈다. 효과도 6개월이나 지속됐다. 카도쉬 교수는 “수학장애(dyscalculia) 환자나 뇌 질환으로 수리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이 방법으로 치료하면 거스름돈 계산 같은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2010년 11월 4일 과학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됐다.
이 장치가 수리 능력뿐 아니라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결과도 있다. 미국 템플대 연구팀은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 부분인 측두엽에 전기 자극을 줬더니 사람의 이름을 듣고 기억하는 능력이 11%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도대체 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머리가 좋아지려면 신경세포인 뉴런이 대화를 더 잘 해야 하는데 전류가 이 과정을 돕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뉴런의 대화는 물시계에 비유할 수 있다. 위쪽 그릇에 물이 가득 차 넘쳐야 아래 그릇으로 흐르는 것처럼 뉴런도 전기신호가 55mV를 넘어야 옆 뉴런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55mV를 어려운 말로 뉴런의 ‘역치’라고 한다. tDCS에서 흘려준 전류는 이 역치 값을 낮춰 뉴런끼리 신호를 빨리 전달할 수 있게 한다. 그야말로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것이다.
tDCS가 머리에 전류를 흘리는 최초의 기계는 아니다. 1804년 이탈리아 과학자 지오바니 알디니는 직류 전류를 직접 뇌에 흘려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려고 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외과 의사인 빅터 후슬러는 간질 수술에 전기 자극을 썼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뇌에 전류를 흘리기 위해서는 머리를 여는 대수술을 해야 했다. 또 전류량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기술도 없었다.
이런 기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는 미국 예일대 의대의 호세 델가도 교수다. 그는 원래 안과 의사였지만 스위스의 생리학자 발터 헤스의 논문을 보고 전공을 바꿨다. ‘고양이 머리에 바늘을 꽂고 전류를 흘려줬더니 분노, 배고픔, 졸음 같은 감정이 줄어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델가도 교수는 평소 정신과에서 하는 수술에 불만이 많았다. 당시에는 강박장애나 심한 폭력성을 치료하기 위해 뇌 전두엽의 앞부분을 망가뜨리는 수술을 하기도 했다. 델가도 교수는 전기 바늘을 이용해 이런 수술을 대체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비록 델가도 교수의 실험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전기 바늘이 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 장치를 ‘뇌심부자극(DBS, Deep Brain Surgery)’이라는 의료기기로 발전시켰다. 볼펜 심 정도(1.27mm)의 가는 전극을 뇌 속에 삽입해 지속적으로 전기자극을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떨림증, 만성통증 같은 신경계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이용된다.
수술 없이 머리에 전류를 흘려주는 방법도 나왔다. 1985년 영국의 안토니 베이커는 자기장을 이용해 머리에 전류를 흘릴 수 있는 ‘경두개자기자극(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이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 기계는 1.5~3T(테슬라) 정도의 강력한 자기장을 만드는데, 여기에 사람의 머리를 대면 자기장 변화 때문에 뇌에 전류가 흐르게 된다. TMS는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3] 출처 (GIB)
우울증 환자 65%가 치료돼
뒤이어 개발된 것이 머리 좋아지는 기계, tDCS다. tDCS는 TMS에 비해 양쪽 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TMS의 경우 망가진 뇌(한쪽 반구)를 자극해도 여전히 반대쪽 뇌보다는 활성이 적기 때문에 다시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tDCS를 이용하면 양 쪽 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양극을 망가진 쪽에 붙여 활성화시키고 음극을 반대쪽에 붙여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tDCS의 두 극 중 하나만 쓸 수도 있다. 뇌 기능을 활성화 시키고 싶다면 tDCS의 양극만 뇌에 붙이고 음극은 어깨 같은 곳에 붙이면 된다.
[그림4] 출처 (GIB)
이 방법은 우울증 치료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미국 뉴욕국립정신의학연구소(NYSPI)의 필립 프레그니 교수는 우울증 환자 40명 중 일부에게 tDCS로 뇌를 자극했다. 그 결과 tDCS 치료를 받은 환자 그룹은 우울감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대답했다. tDCS는 중독을 치료하는 데도 유용하다. 2008년 브라질 멕켄지대의 파울로 보기어 교수팀은 중독 중추인 전두엽 피질을 이 장치의 음극으로 자극했더니 중독 증상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tDCS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tDCS 연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약 10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치료를 위해 쓴다면 얼마만큼의 전류를 얼마 동안 흘려줘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 정확하게 머리의 어느 부분을 자극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도 남은 숙제다. 지금 쓰는 TMS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장치(MRI)로 환자의 뇌 영상을 찍어 코일을 어디에 댈지 정한다. 그러나 tDCS는 이런 기술이 없다. 지금은 대상 부위 인근에 전류를 흘리는 수준이라 정확도가 떨어진다. 또 화상과 근육경련을 막기 위해 머리에 붙이는 전극은 가로, 세로 5cm로 큰 편이다. 이렇다보니 꼭 필요하지 않은, 뇌의 여러 부위가 복합적으로 자극되기도 한다. 앞으로 MRI 등을 이용해 위치 좌표를 정확히 정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필자 소개 / 신선미
신선미는 연세대학교에서 생물학과 생명공학을, 동대학원에서 환경미생물학을 공부했습니다. 동아사이언스에 입사해 ‘과학동아’와 ‘어린이과학동아’ 기자로 일한 뒤 현재는 과학동아데일리팀에서 동아사이언스포털과 동아일보에 과학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학술지에 실린 연구 성과와 국내 과학자 이야기, 일상 속 과학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