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두 번 받은 과학자들
최성우의 데자뷔 사이언스(36)
유능한 과학자라 해도 노벨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일생에 한 번 받기도 어려운 노벨상을 두 번씩이나 받은 과학자들도 있는데, 여성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인 퀴리부인, 즉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가 그런 경우임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은 과학자들은 퀴리 부인 이외에도 세 명이 더 있다.
다른 분야의 노벨상을 두 번 받은 퀴리부인과 폴링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퀴리부인은 방사선에 대한 연구 및 새로운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의 발견 등으로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즉 1903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스승인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 남편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1906)과 함께 받았고, 남편이 죽은 후인 1911년도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한 바 있다.
다른 분야의 노벨상을 두 번 받은 과학자로는,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1994)도 있다. 폴링은 이온구조화학 분야에서 1인자로 꼽히는 저명한 화학자로서, 양자역학이론을 화학에 적용시켜 오비탈 이론을 세웠으며, 화학결합에서 중요한 전기음성도 개념을 제시하였다. 화학결합의 본질 등을 밝힌 공로로 1954년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을 수도 있는 기회가 있었다. 즉 폴링은 DNA의 구조 연구를 놓고 왓슨(James Watson; 1928-), 크릭(Francis Crick; 1916-2004), 윌킨스(Maurice Wilkins; 1916-2004) 등 다른 과학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DNA 구조가 나선모양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상당한 연구를 진행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1952년 영국 왕립학회가 주관하는 DNA 관련 심포지엄의 연사로 초청받았으나, 당시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싸여 있던 미국에서 그는 ‘용공주의자, 혹은 사상이 의심스러운 반미분자’로 간주되었고, 미국 국무부는 끝내 여권 발급을 거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프랭클린(Rosalind Elste Franklin; 1920-1958)의 DNA X선 회절사진을 볼 수 없었고, 그 결과 1953년에 쓴 논문에서 DNA가 3중 나선구조라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결국 왓슨과 크릭에게 최후의 승자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폴링은 한때 국방관련 연구를 하기도 했지만, 오펜하이머 등이 주도한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후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반핵 과학자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에 반애국적, 사회주의적인 인물로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1954년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에도, 그에게 출국용 여권을 허락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폴링은 그 후로도 다른 양심적인 과학자들과 함께 대기 중 핵실험 금지를 위한 서명 작업을 주도하는 등 반핵 평화운동에 열중하였고, 그 공로로 1962년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만약 그가 1952년에 출국금지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3차례나 노벨상을 받는 전무후무한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분야의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생어와 바딘
몇 년 전에 타계한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Frederick Sanger; 1918-2013)는 노벨화학상을 두 차례 받은 바 있다. 먼저 인슐린의 아미노산 배열순서를 규명한 공로로 1958년도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하였다. 그리고 DNA의 유전정보와 직결된 핵산의 염기결합서열 결정 방법을 개발하여 월터 길버트(Walter Gilbert; 1932-), 폴 버그(Paul Berg, 1926-)와 공동으로 1980년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생어의 첫 번째 노벨화학상 수상 공로는 당뇨병 치료에 사용되는 생리학적으로 중요한 호르몬인 인슐린의 단백질 구조를 확정했다는 의미가 있고, 두 번째 노벨상 수상 공로는 DNA에서 구성단위의 정확한 서열을 결정하기 위한 분리방법을 개발한 것이므로 유전자공학 시대를 앞당기는 데에 공헌한 셈이다.
고체물리학자 바딘(John Bardeen; 1908-1991)은 트랜지스터 발명과 초전도에 관한 이론으로 두 차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반도체와 금속의 전기전도, 원자의 확산 등 고체물리학 전반에 관하여 폭넓게 연구하여 그 이전부터 여러 업적을 남겼다.
트랜지스터는 규소나 게르마늄으로 만들어진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세 개의 층으로 접합하여 이루어진다. 즉 이미터(emitter; E), 베이스(base; B), 컬렉터(collector; C)가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면서 신호를 증폭시키는 기능을 지닌다.
트랜지스터는 1947년에 미국 벨연구소의 세 명의 물리학자, 즉 존 바딘,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1910-1989),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Walter Houser Brattain; 1902-1987)에 의해 처음으로 발명되었는데, 공동으로 중요한 발명을 완성한 독특한 사례를 남긴 셈이다. 이 공로로 세 명의 물리학자는 1956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바 있다.
바딘은 트랜지스터 발명 이후에는 초전도 현상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여,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초전도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였다. 즉 특정 물체의 전기 저항이 극저온에서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은 물리학자들의 흥미를 끌게 되었는데, 바딘은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이 원인을 규명한 것이다.
고체물리학 교과서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초전도 현상의 요인을 설명하는 이른바 BCS 이론은 1957년에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세 명의 물리학자, 즉 바딘(John Bardeen), 쿠퍼(Leon N. Cooper; 1930-), 슈리퍼(John Robert Schrieffer; 1931-)에 의해서 정립되어서, 이들의 두문자를 따서 BCS 이론이라 불린다. 바딘은 초전도 이론을 세운 업적으로 두 명의 동료 물리학자들과 함께 1972년에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즉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최초의 물리학자가 된 셈이다.
두 차례나 노벨상을 받는 것은 물론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으나, 과학자로서의 업적이나 능력이 꼭 노벨상 수상 횟수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나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는 그들의 숱한 공로나 후대에 미친 영향 등을 고려할 때에 노벨 물리학상을 적어도 세 차례는 받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최성우 과학평론가
- 저작권자 2016.07.1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