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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4차산업혁명

FERRIMAN 2017. 7. 16. 14:55

[리더스 앵글] 4차 산업혁명 고용 불안? 유럽 노조는 "스마트 기술 환영"

입력 2017-07-10 01:00:05
2016년 다보스 포럼이 내놓은 의제인 ‘제4차 산업혁명’은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이 변혁의 폭은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은 1, 2차 농업혁명과 1~3차 산업혁명에 못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가 급격한 변혁을 맞으면 늘 사회적 진통이 따른다. 하지만 경제적 혁명은 늘 인류의 진전을 가져왔고, 여기서 낙오된 나라와 민족은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치러왔던 것이 인류사의 교훈이다.

한국이 일제 강점기와 민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지금의 분단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비용을 치룬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이 수용한 산업혁명을 거부한 결과다. 더 가까이는 전자·통신과 같은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은 것도 디지털 혁신을 선제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새겨본다면 거대한 변혁을 예고하는 4차 산업혁명 또한 한국사회가 선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의지가 없다. 오히려 두려움에 짓눌려있는 분위기다. 독일 등 유럽의 노조들이 "노동자들이 디지털 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학습과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직장, 스마트 기술을 도입해 더 안전한 직장을 만들자"는 기본 입장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가라앉은 분위기의 배경엔 미래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크게 없어질 거란 경고는 다보스 포럼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프레이·오스본 교수가 "미국 등 선진국에 존재하는 일자리의 47%가 수년 내에 자동화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불안감은 더 커져가고 있다.

"인공지능은 전문직까지 대체할 수 있다"는 경고도 쏟아진다. 가뜩이나 청년 실업과 고용의 질 하락에 대한 우려가 큰 우리 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불안감이 더 확산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과연 기술이 우리 일자리를 대량으로 뺏아갈 거란 수동적이고 패배적인 우려가 근거있는지를 우선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일자리 시장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반도체 기술이 일자리 시장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우리가 미리 예측할 수 있었을까. 원래 반도체는 연산과 정보 저장을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반도체 덕분에 사진과 음악 같은 미디어가 디지털화 됐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처음 소개됐을 땐 모두가 텍스트 정보 검색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통해 택시를 집앞으로 호출할 수도 있다는 건 십수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됐다.

우리가 진정 걱정해야 하는 건 기술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자리를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에선 모든 기업의 공급망 사슬이 세계 곳곳에 뻗어있다. 애플의 스마트폰이 창출해낸 일자리를 보자. 디자인과 마케팅, 앱을 만드는 일자리는 미국, 조립하는 일자리는 중국, 메모리와 화면을 만드는 일자리는 한국에서 나눠 갖는다. 특정 기술이 만드는 일자리 중에서 한국의 몫을 키우는 국제 경쟁력이 중요하지, 전체 일자리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평등이 심해질 거란 우려도 근거가 희박하다. 선진국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이들 나라의 공장이 해외로 나가서다. 후진국의 공장 노동자와 경쟁하는 상황에 놓이니, 선진국 공장 근로자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집약적 서비스업에 몰리면서 선진국의 저임금 서비스업 일자리의 처우도 나빠졌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프리드만 교수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중국과 인도가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전세계 경제 인구는 단기간에 두배로 늘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교육에 의한 진입 장벽이 높은 금융·법률·의료 등 고소득 지식기반 서비스업 종사자와 저숙련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확대됐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세대 간 교육 격차가 크고, 특히 장년층에서 남녀 간 교육 격차가 크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소득 격차가 더 빠르게 확산할 구조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소득 격차의 원인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학 관계에서만 찾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또 하나의 원인은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등 기업이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수퍼스타 경제화’(Superstar Economy) 현상이다. 스마트폰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공산품이다. 엄청난 대기업들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드는데도 이익은 애플과 삼성전자, 두 회사가 다 가져간다. 다른 대부분의 기업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창의성 기반의 지식 산업화의 결과다. 과거와는 달리 설비를 증설한다고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다음 제품을 얼마나 더 창조적으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적이 좋은 회사는 최고의 인재를 싹쓸이하고, 이 인적자산의 경쟁력이 자산과 자본의 경쟁력을 압도한다.

4차 산업혁명은 사업의 글로벌화와 경제의 지식산업화의 심화, 기업경쟁력이 고급 인적자원에 좌우되는 현상의 심화를 뜻한다. 그리고 정보검색과 거래 비용의 감소로 고용 계약도 프로젝트 고용의 확대 등 거래의 유연화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고용 정책은 이렇게 가야 한다. 첫째, 수월성·창의성 위주의 교육과 훈련으로 인적 자원의 질을 높여야 한다. 둘째, 노동 시장을 유연화해서 글로벌 인재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기업들이 자동화보다 고용이 낫다고 여길 수 있도록 기업의 고용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 사슬을 디자인할 때 한국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만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응 방안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불행하게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의 규제는 더 강화시키고, 교육은 수월성 보다는 하향 평준화를 추구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 암시하는 경제구조의 변화와 반대 방향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