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17.07.24 10:14:17 부제목: [기획연재] 미국의 시니어정책 필자명: 정건화 필자소개: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및 서울50+재단 이사로 사회혁신을 통한 지역사회 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행정(지방정부)-대학 간 협력을 위한 크고 작은 실험들에 참여하고 있고 최근에는 고령화와 베이비 부머의 은퇴 후 삶과 사회공헌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한반도 경제론』, 『노무현 시대의 좌절』, 『한국사회의 쟁점과 전망』, 『북한의 노동』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우리사회의 고령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2017년 4월 현재 고령자(65세 이상)인구 비율이 13.8%로 고령사회(Aged Society: 고령인구 비율 14%) 진입이 코 앞에 닥쳐있다. 2000년 고령화사회(Aging Society: 고령인구 비율 7%)에 들어선 이후 고령사회로 이행하는 데 불과 18년밖에 걸리지 않아 일본(24년), 미국(73년)에 비해 그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더욱이 앞으로 10년 후에는 시니어 인구비율이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로 접어들 것이고 2060년에는 40%를 넘어 세계적으로 1-2위를 다투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미 제출되어 있다. 또 730만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 기준)의 은퇴와 고령화도 본격화되었다.
우리사회는 지금 진행되는 거대한 인구학적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경제활동에서 배제됨으로써 부득이 대규모 복지지출의 수혜자로 이행하는 고령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사회보장 시스템은 기초적인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미흡하다. 그래서 고령세대의 상당수가 스스로의 경제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국제비교 통계를 보면 OECD국가 중 한국은 고령세대 소득구성에서 연금소득의 구성비가 가장 낮고 근로소득의 구성비가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고령층의 소득구성 국제비교 (OECD 회원국 대상)
출처: OECD 2013. 한겨레, 2015. 5.12.에서 재인용(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690818.html )
고령세대의 경제활동 비율이 높지만 고령세대가 처한 노동시장 상황은 심각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정년연령은 55~57세로서 선진국의 평균적인 정년연령인 60~65세와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고 우리의 평균수명이나 노령연금 지급시기와도 크게 괴리가 있다. 게다가 비자발적인 조기 정년퇴직이 만연해 있고 퇴직 후 근무연장이나 재고용의 길은 거의 막혀 있다. 그럼에도 노동시장에서 ‘완전은퇴’ 혹은 ‘실제은퇴’ 연령은 대략 68~70세로 추정된다(국회입법조사처, 2010). 조기은퇴 후의 장-노년층은 기초연금 외에는 별다른 소득원이 없기 때문에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55세 전후에 일단 퇴직한 다음 경제적인 이유로 이후 13~15년 정도를 더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시니어 일자리는 주로 서비스 분야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대졸 이상 고학력 시니어층의 고용상황에 대한 최근 보고서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올해 7월 11일 발표한 자료 <고학력 베이비부머와 고령층 일자리의 해부>에 따르면 대졸 이상의 고학력을 가진 베이비부머와 고령층 근로자 수는 2016년 기준 91만 명이다. 즉 55세 이상 연령층 근로자 5명 중 1명이 대졸 이상 고학력자인 것이다. 오랜 경력을 지녔지만 63세 이상 고령층의 3명 중 1명, 55세-62세 베이비부머 7명 중 1명은 자신의 경력과 무관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관리자'나 '전문가/관련종사자'로 일했던 63세 이상 고령층의 경우 그 3분의 1이 ‘단순노무', 절반 가량이 ’비상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연금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노후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저임금 근로 또는 자영업 근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카페, 치킨집, 제과점, 편의점 등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이 우후죽순 생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베이비부머의 고령화가 본격화될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 자명하다.
우리사회 고령층 빈곤의 심각성은 국제비교 통계를 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고령층의 고용률은 30.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나지만 노인빈곤율은 OECD 평균 12.4%의 4배로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빈곤율도 높아지다가 65세 이상부터는 OECD 평균의 4배 수준에 이른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06년 43.9%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OECD 33개국 가운데 20개 국가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과도 대조적이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준비 부족에 따른 고령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노정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노인 파산과 빈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높은 노인자살률은 현재 우리사회의 맨 얼굴이다.
고령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미국 고령화에서 무엇을 참고할 것인가
작가이자 여성해방운동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서를 남긴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1970년 『노년(Old Age)』(책세상,2002)이라는 책을 썼다(원제목 『La Vieillesse』). 스스로 노년에 이른 62세에 책을 집필한 보부아르는 750페이지 가량의 지면을 할애해서 노인을 둘러싼 모든 문제, 즉 노인의 사회적 위상, 사회제도, 건강과 성생활, 정신병리학적 문제 등에 대해 방대한 문헌과 실증자료를 토대로 세밀하게 다룬 후 마지막 5페이지 분량으로 간결한 결론을 내린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세상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의 부제를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으로 붙인 저자는 나이듦을 단지 생물학적인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노쇠라는 말이 담고 있는 퇴보와 쇠퇴의 개념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배경 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봤다. 그리고 노화에 따른 노년이 삶의 중심적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 사회적 토대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보부아르의 이러한 인식에 공감하며 이것이 시니어 정책을 세우는 데 기본인식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노년, 고령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새로운 노년의 탄생’이라 부르고자 한다. ‘새로운 노년의 탄생’은 형용모순 같지만 노년의 의미, 이미지, 사회제도와 정책 등 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사회의 유, 무형의 사회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사회변화 프로젝트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 의미’에서 노년은 탄생 이후 죽음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 속에 반대지점을 향해 나아간 상황을 말하지만 ‘사회적 의미’로서의 노년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
‘새로운 노년의 탄생’을 위한 프로젝트는 비단 노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비단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를 더 안전하고 따듯하며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것이듯 사회 구성원의 주체이자 대상으로서 새로운 노년의 상을 형성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미래사회의 대안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출처: https://www.google.co.kr/ >
지금까지 ‘기획연재: 미국의 시니어 정책’라는 제목으로 9회에 걸쳐 미국사회의 고령화에 대해서 다루었다. 글로벌 현상인 고령화의 미국적 상황과 특징을 살펴보고, 정부 차원의 중요한 시니어 관련 정책을 정리한 다음 고령화와 은퇴를 맞은 베이비부머들의 인식과 경제활동,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활동을 소개했다. 9회에 걸친 기획의 세부 주제와 글은 아래와 같다.
그동안 글에서 간간이 언급한대로 미국의 고령화 상황과 그에 대한 대응이 우리 사회의 관행이나 노동시장 여건, 시민사회 상황 등과 매우 다르므로 소개한 사례들이 주는 시사점과 정책 함의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고령화 관련 제도와 정책을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마련하고 시행한 미국과, 고령사회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우리사회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실제로 미국의 고령정책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노년층의 평균적인 생활여건은 세계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다. 미국의 50세 이상 장-노년층의 삶에 대한 주관적 평가(만족)는 OECD 국가 평균보다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미국 내 30-40대 성인 연령세대에 비해서도 높게 나타난다. 2000년대 들어 최근까지 15년간 65세 이상 노년층의 고용률이 늘어났으며 그 상당 부분은 풀타임 일자리로 채워졌다는 소식(Pew Research Center, 2016) 또한 우리 현실과 커다란 대조를 보인다.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통해 시니어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고민할 일차적인 책임과 역할은 정부의 몫으로, 법과 제도, 행정인력과 예산을 통해 필요한 물적·비물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인구학적 변동이 초래하는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문제는 결코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출생률과 사망률의 추이를 보면 향후 20년, 50년, 100년 후의 인구구조가 초래할 문제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령화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는 말은 ‘다가오는 확실한 미래’에 대해 그 사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고령화는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이며 이제라도 서둘러 미국 시니어들의 노후 소득보장과 보건의료, 여타 필요한 사회적 보호에 핵심 역할을 한 제도적 장치에 상응하는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시행한 다양한 정책이나 프로그램의 성과는 미미한데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고령자 고용정책이 시작된 것은 2005년 무렵이고 이후 정부는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2007~2011)’(2006년), ‘고령화 시대에 대응한 ‘50+세대’ 일자리 대책‘(2009년) 등을 수립했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제정(2005년)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구 고령자고용촉진법)개정’(2008년)이 있었다(국회입법조사처, 2010). 이들 정책이나 프로그램들은 법적 강제력이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권고 수준을 넘지 못한다. 예컨대 고령자고용촉진법은 사업장 근로자 수의 3% 이상을 55세 이상 고령자로 채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고용의무는 노력의무이고, 위반에 대해서는 벌칙규정이 없다. 그 결과 노동시장에서 정년연령은 낮고 평균수명이나 노령연금 지급시기와 괴리는 너무나 커서 고령세대의 자산축소와 마이너스 금융순자산 가구가 늘며 이들의 (근로)빈곤을 확대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 노인복지의 세 축인 소셜시큐리티(공적 퇴직연금),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료보장과 돌봄), 노인법(노인보호 및 복지)이 제정되는 데 기여한 백악관 고령화 컨퍼런스(WHCoA: White House Conference on Aging)처럼 우리도 정부부처, 의회 그리고 관련 전문가와 기업, 시니어 당사자 및 중간지원 조직, 지역사회 등이 참여하여 고령화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위한 제도 마련과 정책시행 논의를 조직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보부아르의 문제의식처럼 고령화에 대한 대응의 핵심은 ‘시니어라는 존재가 정부나 사회, 가족 구성원들에게 단지 돌봄의 대상이 되는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니어가 주체적으로 정부의 정책, 시장과 기업, 시민사회와 함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공동의 과업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위한 정책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시장과 국가 영역에서만 해법과 해결의 동력을 찾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과 문제영역의 광범위함에 비추어 보면 부적절하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현실은 국가나 시장의 실패가 일상화된 데 기인한다. 정부의 역할은 한계가 분명하며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일은 제도 내 이해관계를 지닌 행위자들의 행위양식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미국사회를 대상으로 정부 차원에서의 정책적 노력 외에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대응,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 스스로의 주체적인 노력을 소개하였다. 특히 미국에서 시민사회의 역할과 당사자의 다양한 주체적 대응의 사례들은 관심을 가질 만 하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방정부나 주정부, 지방정부와 협력하고 또 공익적 사회공헌활동을 지원하는 재단들의 지원을 받아 지역사회 커뮤니티 활성화와 세대통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고령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정년연장과 동시에 유연근무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관행을 변화시키는 중앙 정부 차원의 정책변화가 필요하다. 그에 수반해서 고령 일자리 창출이나 이를 위한 직업훈련을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지역기반을 강화하고 민관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사례를 검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시니어 노동력의 재취업을 위한 지원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민관협력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컨대 시니어 환경분야 고용프로그램인 SEE(Senior Environmental Employment)는 환경청 예산으로 운영되며, 장년층의 경험과 숙련, 지식을 활용해서 환경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영역에서의 고용기회를 제공하고 또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의 환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세계적으로 빠른 고령화의 원인으로는 1950-60년대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제 노년을 맞이하게 된 인구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은퇴와 고령화를 주도할 1, 2차 베이비붐세대는 1,500만 명에 육박한다. 새로운 노년의 상을 만드는 일은 대규모로 노년으로 이행해가는 베이비붐세대의 몫이기도 하지만 이를 위한 제도와 지원 등 유·무형의 사회적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한다. 미국은퇴자협회(AARP)에서 설립한 ‘라이프 리이매진드 연구소(Life Reimagined Insttitue)의 설립자이자 원장인 에밀리야 팔도(Emillo Pardo)는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마치 서커스의 공중 그네타기에서의 그네 옮겨타기 과정과도 같은’ 낯설고 두렵고 어려운 선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출처: https://www.google.co.kr/ >
3,8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미국 최대의 비영리 시니어 당사자 조직인 미국은퇴자협회는 뉴스레터와 잡지를 발간하며 생활정보 제공, 커뮤니티 서비스와 교육(직업교육 포함), 보험 및 금융 부동산업, 자선재단, 법률지원서비스, 연구조사, 애드보커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러한 지원을 수행하고 있다. 이 단체의 활동 중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민간기업들을 대상으로 고령자의 파트타임 및 일자리나누기 확대를 위한 시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동시에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시니어 노동력의 질적 강화를 위해 시니어 재훈련, 직업전환 지원, 경력재설계(career path re-design) 등에 힘쓰고 있다는 점이다.
앙코르닷오알지(Encore.org) 역시 미국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후 삶과 노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이를 '하나의 시민운동적 흐름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대표적인 민간비영리조직이다. 이 조직 역시 공모사업과 시상, 언론홍보와 연구조사, 사례의 축적과 기록, 출판, 컨퍼런스와 모임 개최, 네트워킹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주체적 대응의 측면에서 노년의 삶으로 이행해가는 50대-60대 초반의 사람들에게 스스로 노년의 정체성에 대한 학습과 성찰, 숙고의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야 하고 노년의 삶의 다양한 선택경로에 대한 모색을 활발하게 시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노년의 삶, 시니어 새로운 일자리와 사회공헌 활동을 지원하고자 서울시에서 설립한 50플러스재단과 50플러스 캠퍼스와 50플러스지원센터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당사자 프로그램들의 성과가 주목된다.
미국에서 시행된 60세 이상 시니어 대상 조사(2015년)에서 응답자의 58%가 최근 20년 이상 현재의 주거지에 거주하고 있고 또 75%가 현재의 거주지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에서 동일한 조사를 해도 결과는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상생활의 영위에서도 누군가로부터 도움이 필요해지는 초고령 시니어들에게 '현재 살고 있는 공간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는가'의 여부는 이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고령세대에 대한 돌봄이 지역경제, 지역고용과 연결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특별히 초고령 시니어에 대한 사회 서비스의 경우, 고령세대가 지역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재가 노인복지 서비스에 대한 물적, 인적 인프라 구축과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지원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리는 노인 요양시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제대로 관리, 감독되지 않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대안적 접근이 절실하게 필요한 과제이고 미국의 사례에서 꼼꼼히 살펴보고 배워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이 영역은 공공서비스의 시장화가 해법이 아님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대안은 정부의 공공정책과 제3섹터 간 협력,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경제의 확장에 있다. 미국에서는 공공부문과 연계한 비영리 제3섹터나 사회적 경제에서 가사지원, 요양시설, 주거, 돌봄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민관 협력모델들이 작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비스의 질 향상과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면서 기존 공공예산으로 시행되는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와 평가가 좋아지는 성과도 나타났다. 또 애드보커시 그룹의 관심과 개입을 통해 고령층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여론의 환기와 개선이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시니어 주택협동조합은 아파트나 타운홈 커뮤니티에서 안전하고 적정한 주거여건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시니어 주택협동조합은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격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단독주택 소유 고령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소규모 주택들을 네트워킹한 소규모 주택협동조합도 고령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세대를 넘나들며 이웃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가능케 했다. 또 지역사회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고령세대 지원모델의 사례로 미국 메사츠세츠 주 보스톤 근교의 비콘힐(Beacon Hill)이라는 마을에서 시작된 빌리지 운동(Village Movement)이 있다, 에이징인플레이스운동(Aging in Place movement)으로도 불리는 이 운동은 고령세대로 하여금 살던 집과 마을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개별 빌리지와 빌리지 운동이 지속되고 성장하도록 서로 협력하는 전국적인 네트워크인 빌리지투빌리지 네트워크(Village to Village Network)가 결성되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와 고령화가 노년으로의 진입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장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과 사회를 위해 만족스럽고 긍정적인 삶을 전개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미국의 시민사회 내 비영리 당사자 및 중간지원 조직,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조직들의 다양한 활동들은 우리 시민사회가 관심 있게 살펴보고 벤치마킹할 풍부한 콘텐츠들을 제공한다.
글을 맺으며
고령(화)사회란 고령인구, 즉 노인이 사회의 주된 구성원이 되는 사회로서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맞는 상황이다. 노인이 다수가 되는 사회에서 그들을 단지 보살핌의 대상으로 볼 때 그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시니어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으며 대응해온 서구의 경험에서 볼 때 지금까지 시행해온 많은 제도와 시스템들, 예컨대 노동시장, 연금이나 의료, 도시계획 등은 고령화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세대갈등의 심화이다. 이미 우리사회에서는 청년 일자리 문제와 주거빈곤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따라서 축복이어야 할 '호모 헌드레드' 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과 재앙이 되는 '장수 패러독스' 혹은 '장수 딜레마'를 초래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2013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사회혁신리뷰(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에서 사회혁신의 사례로 선정된 앙코르닷오알지의 창설자이자 사회혁신가인 마크 프리드만(Marc Freedman)이 지난 2016년 가을 서울50+국제포럼에서 제시한 키워드는 ‘혁신’이었다. 그는 고령화 문제에 대해 혁신적으로 대응하라고 조언했다. 사회혁신이란 경계와 영역을 넘나들며 기존 접근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해법을 통해 이룩한 작은 성과가 이후 사회적으로 큰 영향(impact)을 미치고 새로운 사회적 흐름(trend)을 형성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사회 고령화에 대한 혁신의 과정은 베이비붐 세대가 주체가 되어 노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즉 새로운 노년의 상을 제시하는 것, 나아가 관점의 제시에 그치지 않고 당사자 조직을 포함해서 시민사회의 영리·비영리부문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확산된 성과가 공공부문에서 고령화 정책의 방향과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공공정책의 효과와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는 것이다.
우리사회 베이비부머의 고령화에 대한 사회혁신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답을 고민할 때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 노년은 ‘우리의 미래’이니까...
“늙는다는 것보다 더 자명하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그러나 또한 그것보다 더 예상하지 못한 일도 없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노년』)
기획연재 미국 베이비부머의 삶, 그와 관련한 사회 시스템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까지 알아본다. 그럼 한국은 어쩌지? 역사와 조건이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적용시킬 수는 없지만 일단 그들의 선행과정을 살피면서 지혜를 모으고 이야기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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