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362조 우주산업 시장을 열었다 … 현실 속 아이언맨들
입력 2018-07-05 00:29:55
수정 2018-07-05 02:08:30
"5년 전 10개 뿐이던 우주 산업체가 이제는 1000여 개로 늘어났습니다. 과거 15년간의 변화가 이제 5년 안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오전 미국 시애틀 남쪽 랜턴의 워싱턴호 인근 하얏트 호텔 행사장에서 열린 ‘뉴 스페이스 2018’이라는 이름의 콘퍼런스에 200여 명의 ‘우주 벤처인’들이 모였다. 미국의 비영리법인 우주 프론티어재단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 등 민간 우주 관련 기업들이 후원한다. ‘뉴 스페이스’(New Space)라는 행사명에서 알 수 있듯 기존의 국가 주도의 우주산업이 아닌, 민간 주도의 새로운 우주 시대를 고민하는 기업인들의 모임이다. 콘퍼런스는 3일 동안 우주산업 투자와 국제협력·시장전망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민간 우주산업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한국은 아직 국가 차원의 우주 발사체(로켓) 하나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민간기업들이 앞다퉈 위성발사 서비스와 우주여행 등의 상품을 내놓고 있다. 특히 미국의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은 항공우주국(NASA)도 생각하지 못한 재사용 로켓을 개발하는데 성공해 수익성 개선까지 나서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5일 블루오리진을 현지취재했다. 블루오리진은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2000년 설립한 우주개발회사다. 2015년 11월 뉴세퍼드 로켓을 지구 상공 100㎞까지 쏘아올린 뒤, 지상에 다시 착륙시키는 준궤도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민간인을 우주로 올려보내 무중력 체험 등 우주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로켓이다. 우주 체험에는 3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지만, 대기자만 벌써 700명에 이를 정도다. 올 4월에는 8번째 무인발사에 성공했으며,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유인 시험 발사까지 마칠 예정이다. 블루오리진은 그간 외국, 특히 발사체 개발을 진행 중인 한국의 언론사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NASA에서 이전받은 기술이 유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블루오리진은 시애틀 남쪽 소도시 켄트에 본사와 공장이 함께 있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뉴세퍼드 로켓의 엔진인 ‘BE-3’와 승객 6명을 태울 캡슐이 나타났다. 캡슐은 고도 100㎞ 안팎의 상공에서 4분간 머무르다 낙하산을 타고 지구로 귀환한다. 캡슐 안에 들어서니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 아래 누운 자세로 탈 수 있는 의자 6개가 있었다. 몸무게의 3.5배까지 중력이 걸리는 것을 견디기 위한 방법이다. 의자 아래에는 X자 모양의 충격 흡수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캡슐 가운데는 원통 모양의 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홍보담당자인 케이틀린 디트리치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비상 탈출용 로켓엔진이 원통 안에 들어있다"고 말했다.
캡슐 맞은편에는 신형 로켓엔진인 BE-4가 은빛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블루오리진의 차세대 로켓 뉴글렌에 장착될 엔진이다. 2020년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뉴글렌은 블루오리진 경쟁사인 스페이스X의 팔콘헤비를 넘어서는 대형로켓이다. 뉴글렌은 고도 100㎞까지만 올라가는 뉴세퍼드와 달리 13t의 화물을 3만5000㎞ 상공 정지궤도까지 쏘아올릴 수 있다.
우주여행은 물론, 위성 발사나 화물운송 서비스까지 염두에 둔 기능이다.
블루오리진 측은 기술 측면에서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스페이스X를 의식했다. 공장에서 만난 블루오리진의 한 엔지니어는"(화성탐사까지 나선다는) 스페이스X의 계획은 과장이 심하다"며 "우리는 스페이스X의 기술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이스X는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2002년 세운 회사다. 올 2월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테슬라 전기차를 실은 초대형 로켓 팔콘헤비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려 주목을 받았다. NASA의 달착륙선을 쏘아올린 새턴V 로켓 이후 가장 큰 로켓이면서, 재사용 가능한 로켓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이 팔콘헤비 로켓보다도 더 큰 빅팔콘로켓(BFR)을 만들어 2024년까지 화성에 유인 탐사선을 보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스페이스X는 이와는 별도로 BFR을 이용해 지상 300㎞이 궤도를 타고 지구 반대편 도시까지 한 시간 안에 이동하는 우주여객로켓 서비스까지 시작할 것이라고 지난해 밝힌 바 있다.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이 지상에서 로켓을 이용해 우주로 올라가는 방식이라면, 리처드 브랜슨이 이끄는 버진그룹 산하의 우주기업 버진갤럭틱은 일반 비행기에 실려 지상 1만5000m 상공까지 올라간 뒤 공중에서 발사되는 우주왕복선 모양의 로켓을 개발하고 있다. 버진갤럭틱은 지난해 지구궤도를 비행하는 우주관광상품을 25만 달러(약 2억8000만원)에 내놓고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팝가수 레이디 가가 등 600명의 인사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미국에서 위성제작은 이미 민간기업의 일이 됐다. 지난달 28일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9번가에 자리한 초소형 위성 제작 및 서비스업체 플래닛 랩스를 방문했다. 2010년 창업한 이 벤처기업은 초소형 위성을 여러 개 쏘아올려 군집형태로 운용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 위성의 이름은 30㎝ 길이에 무게는 4㎏에 불과하지만, 해상도 3m급을 자랑한다. 플래닛 랩스의 위성은 28개의 무리를 이뤄 24시간마다 지구를 한 바퀴 회전하며 지구 상공을 계속 촬영한다. ‘작지만 우수한 초소형 위성’제작과 서비스가 이 회사의 목표다.
마이크 사피안 발사·네트워크 총괄본부장은 "누구나 위성정보에 접근하게 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라며 "위성사진을 제공하는 업체들은 많지만, 농업·도시계획 등 다양한 용도를 위한 이미지 분석까지 해주는 곳은 우리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말했다. 플래닛랩스는 웹사이트(www.planet.com/trial) 방문객이 원하는 곳의 최신 위성 이미지를 최장 14일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
주광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융합연구부장은 "최근에는 이런 소형 위성이 대거 발사되면서 작은 로켓으로 소형위성 발사만을 대행해주는 민간업체들도 생겨났다"며 "2020년이 되면 소형위성의 시장규모는 7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 준궤도 우주비행「 지구 상공 100㎞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무중력을 경험하거나 둥근 지구의 모습을 감상하는 우주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300㎞ 이상의 저궤도 상공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달리 탑승자가 혹독한 우주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고, 우주여행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 때문에 민간 우주여행 관련 기업들이 준궤도를 경험하는 상품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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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샌프란시스코=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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