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기술경쟁력 도약 계기··과학기술이 돌파구”
임인재 객원기자 작성일 2019-08-13 (화) 13:22 수정일 2019-08-13 (화) 13:44 의견0
- 과기 3대 기관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공동토론회 개최
▶ 과총은 지난 8월 7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과 공동으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최근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결정을 발표했다.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른 후속 조치는 8월 28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사태의 충격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향후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지 각계가 고심 중인 가운데 과학기술계의 중지를 모으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와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지난 8월 7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을 주제로 긴급 공동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명자 과총 회장,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을 비롯하여,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발제는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이 진행했으며, 토론회의 좌장은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맡았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인사말에서 “자유무역주의 질서가 깨지고, 글로벌 가치사슬이 고장 났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분야를 점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체 기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국내 공공부문 R&D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반해 사업화는 20%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연구과제 성공률은 상당히 높은데 이것은 어렵고 힘든 과제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과학기술계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거와는 차별화된 장기적이며, 정교하고, 전략적인 기술 개발 로드맵을 만드는 TF팀 구성이 필요하다.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건전한 산업 생태계 조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납품한다는 폐쇄적이고 종속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전 세계 누구에게라도 판매할 생각을 해야 하고. 대기업의 전향적인 판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축사를 한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도 “이번 일본의 조치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 산업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정부는 핵심원천소재의 과도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기술자립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절감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핵심소재에 대한 전략적 R&D투자, 정부 R&D 지원체계를 혁신하여 핵심소재의 기술자립을 실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산화 넘어 세계 일류로 성장해야
▶ 주제발표.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
주제발표를 맡은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일본정부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른 국가적 대응: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글로벌수준 육성 중장기 전략’에 대해 발제했다. 박 회장은 “최근 국제무역 환경이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 변화함에 따라 반도체·디스플레이분야 소재·부품·장비의 국가별 다변화가 절실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변화를 우려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적인 지원과 계획 수립이 추진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 회장은 관련 분야의 인력확보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현재 반도체를 전공하는 석·박사 인력이 줄고 있고, 국내기업의 기업부설연구소 소재부품 분야 연구 인력 수급 또한 매우 어렵다. 이는 소재·부품 업체의 R&D 인력 수급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 이런 현상은 반도체 분야의 국가 R&D 예산 삭감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데 R&D 예산은 인력 수급과 연계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에 대해 진단하며 한국의 테스트베드 구축방안을 제시했다. “글로벌 반도체 소자업체와 동일한 환경에서 제품 평가를 하려면 12인치 패턴 웨이퍼 평가가 진행돼야하는데, 이러한 설비를 갖춘 국내 업체는 5.8%에 불과하다. 소재업체의 경우 해당 시설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글로벌화를 구체화할 방법으로 소재장비 성능평가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실질적인 국산화를 위해선 공정과 동일한 환경에서 평가하는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주요 핵심 소재 부품의 국산화, 해외 공급처 다변화 등을 적극 추진한다면 오히려 일본 소재 업체의 매출액이 급감해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일본 수출규제가 자국의 기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회장은 “2011년 3월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부문의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공급망)이 붕괴되는 일이 있었다. 위기 속에서 당시 국내 반도체 업체 및 정부가 국산화 필요성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점차 문제해결이 되고, 6개월 정도 지나자 다시 묻히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이런 과거 경험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소재를 국산화할 수는 없지만, 특정 품목에서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을 키워내야 한다.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에 그치지 않고 세계 일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산‧학 주도의 컨트롤타워 필요
▶ 패널토론. (왼쪽 사진부터)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 이종수 메카로 사장,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이사, 이현덕 원익 IPS 대표이사,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김태성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황철성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법률사무소 변호사(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지정토론에는 소재, 부품, 장비, 학계, 법조계 전문가 10인이 참석했다. 소재분야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 이종수 메카로 사장,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 부품분야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이사, 장비분야 이현덕 원익 IPS 대표이사,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참여했다. 한편 학계에서는 김태성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법조계에서는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참석했다.
토론은 △지금까지의 국산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와 제도적 보완점 △공급처 다변화 및 국내 자립화의 가능성 여부 △현 일본발 문제를 넘어 미중무역마찰과 기술패권 문제로의 논의 확장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자립화를 위한 산업계와 정부의 역할 등의 소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소재분야의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은 “모든 것을 국산화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다. 앞으로의 국산화는 일본과 같이 고유한 기술을 확보하여 무역 흑자를 낼 수 있는 장기 전략을 가져야 한다. 과거에는 정부 필요성에 의한 국산화를 진행했다면, 지금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국산화 과제에 중소기업과 학계가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산화된 소재의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공급 중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규제에 맞서는 강대강의 정치적 행보보다는 유연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규제 완화를 위한 방안을 찾고, 장기적으로는 국산화를 위한 굳건하고 지속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소재 업체는 현업 위주의 연구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계획과 원재료 단의 기초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자 기업은 국산화 없이는 언제든 도래할 수 있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국내 소재 업체와의 적극적인 공동 개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수 메카로 사장은 “국산화 대체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생각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근시일내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산품을 신규 디바이스 개발 단계부터 적용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소자 업체에서 이끌어준다면 경쟁력 있는 명품이 탄생할 것이다. 대기업에서 개발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기술 개발을 기다려주고, 실패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어준다면 소자업체에도 궁극적으로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컨트롤타워는 정부나 공무원 주도가 아니라 산학의 존경받는 분들로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선별적이고 중장기적인 지원이 핵심
부품분야의 토론자로 나선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은 자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했다. “기술을 창조하기 어려우면 사거나 얻어야 한다. 중소기업은 재정적으로 어렵다. 기술 개발 초기 단계에는 그 기간을 버텨낼 수 있도록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품 업체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이들의 개발 리스트의 제품들을 수요 기업에서 구매해주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이사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국산화를 선행하고 있다. 즉, 잘 달려 나가는 기업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기업 스스로 자생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내 시장만으론 한계가 있고,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기업이 홀로 가기에는 자본의 투여, 기나긴 시간이 요구되는 맹점이 있다. 정부가 나서서 분야별 엄격한 선별 및 중장기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비 분야의 이현덕 원익 IPS 대표이사 또한 시장성 문제를 언급하면서 업계의 도전을 위한 정부와 학계에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이 대표이사는 “국내 장비 회사의 R&D 투자 비율 규모는 글로벌 티어(tier) 회사와 비교해 보았을 때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재 반도체 기술 수준에 비추어보면 R&D, 다양성, 도전정신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장비 업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장비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장비회사에겐 부품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소재, 부품, 장비 모든 분야가 다 잘 되어야 한다. 즉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의 균형적인 발전과 생태계 조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국산화의 속도보다는 대한민국 반도체가 세계 1등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반도체는 모방을 통해 1등을 해왔지만 이제는 모방이 아닌 혁신을 해야 하는 시대다. 리스크와 속도와 시간을 극복할 때 혁신이 이루어진다. 정부와 대기업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중소기업은 속도와 시간을 극복해야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합리적 평가시스템과 R&D 법제 혁신강조
▶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는 과기계 및 산업계와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학계 대표로 나선 김태성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소재·부품·장비분야의 연구가 어려운 점에 대해 대학의 업적평가 시스템을 원인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현재 대학의 업적평가 기준을 살펴볼 때, IF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등을 연구해서는 좋은 논문을 쓸 수 없다. 이미 개발된 기술이지만, 우리가 보유하지 못해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IF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쓸 수 있는 연구를 하게 되고 산업에 필요한 연구를 하기 어렵다. 연구성과가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고, 국산화에 도움이 되는지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왜 일본이 이런 일을 벌였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말을 이어갔다. “일본과 미국은 잃을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소재와 장비를 못 팔면 다른 쪽에 팔면 된다. 우리나라의 D램 생산 및 공급이 줄면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것이다. 즉, 한국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마이크론과 인텔 등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예측이다.
법조계 토론자로 나선 최지선 변호사는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을 산업 관련 법제에서 강조하는 경우 WTO 협정에 위반이 될 소지가 있다며, R&D 관련 법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과학기술기본법’에서의 R&D 특별예산편성이나 예비비 관련 내용 추가 개정 △‘국가연구개발혁신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조속한 시행 △연구개발특구를 신기술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개발특구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 △출연연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매개체,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설립 육성에 관한 법률’에 컨트롤타워 육성에 관한 내용을 추가 개정 △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 과학기술법, 과기관계장관회의규정 훈령으로 산재되어 있는 R&D 컨트롤타워를 개선하여 법제적으로 격상시키는 방안 등이다. 이어 “현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된다 해도, 관련 법제가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향후 이런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R&D 법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토론 후,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현재의 위기를 도전의 기회로 바라보며 ‘결기(決起)’를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대한민국은 위기 극복을 통해 성장했다. 현 위기는 근본적으로 과학기술이 해결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알게 모르게 축적된 역량이 있다. 잠재적 역량을 총동원해 극복하고, 훗날 이 위기가 대한민국이 한 번 더 도약하는 발전의 계기였다고 소회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토론회를 정리하는 맺음말에서 “현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욕이나 애국심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R&D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하고, 중장기전략을 잘 짜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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