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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보다 중국 닮아가는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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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9일 [35면] |
기고자 : 우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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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론이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하지만 정확히 어디쯤 위치하는 것일까.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에 의하면 사회의 건강성은 꼭대기가 아니라 베이스에서 재는 법이라 한다. 경제의 베이스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
상하이에서 남서쪽으로 몇 시간 달린 곳에 위치한 N사. 자본금 15억원에 종업원 140명인 순수한 민영기업이다. 현대식 오피스, 널따란 공장, 잘 갖추어진 설비. 하지만 사장과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얘기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이쪽은 어떻게 경영관리를 하고 있는지를 묻는데 저쪽은 무엇을 얼마나 팔고 있는지를 답한다.
그렇다. 중국의 중소기업은 아직 체계적 관리가 과제로 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물건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다. 기업과 기업, 기업과 종업원 사이에는 ‘돈’이 전면에 나선다. 거래회사에 대금지불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회계 담당자의 주된 임무다. 종업원에게는 도급제로 임금을 지불한다. ‘상호신뢰’나 ‘장기적 성장’은 뒷전으로 물러난다.
장면은 바뀌어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D사. 자본금 3억원, 종업원 50명의 조그마한 기업이다. 공단 한구석에 위치한 공장의 외관은 차라리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D사는 ‘제조업은 곧 서비스업’이라는 첨단의 모토를 내건다. 유저(user)의 주문대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적 제품의 기획에서 최상 품질의 공급에 이르기까지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장기 근속으로 능력을 축적한 종업원만이 이를 해 낼 수 있다고 사장은 자랑한다.
장면은 다시 바뀌어 한국 동남부에 위치한 A사. 자본금 10억원에 근로자가 120명인 자동차부품 회사다. 생산품의 대부분을 1차 하청업체에 납품한다. 금형 및 자재를 1차 하청업체가 제공해 주므로 사실상 임가공이 주된 사업내용이라 할 수 있다. 제품기획·설계 능력은 높지 않다. 이 회사 생산직의 대부분은 ‘소(小)사장제’ 아래 일한다. 즉 회사가 아니라 소사장에게 고용되는 것이다. 회사는 소사장에게 도급대금을 지급하고 소사장이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불한다.
비교하자면 중국·한국·일본 순으로 외관이 훌륭하고 그 역순으로 경영내용이 알차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라는 베이스에 관한 한 한국이 일본보다는 중국을 닮았다는 점이다. 특히 장기적 전망을 결여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중국처럼 일부러 대금지불을 미루지는 않는다 해도 우리의 기업 간 관계는 거래대금을 깎는 데 주력한다. 완성체 업체와 1차 하청, 1차 하청과 2차 하청처럼 힘이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의 인센티브보다는 코스트 삭감의 압력이 크게 작용한다. 하청기업의 기획<30FB>개발력을 활용해 장기적으로 전체의 파이를 늘려 가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기업과 종업원 간 관계에 있어서는 중국보다 오히려 후진적이다. 중국이 도급제 임금에 머무는 반면 우리는 소사장제로 고용 책임 자체를 회피한다. 물량이 줄면 소사장 이하 종업원은 자연히 일을 잃는다. ‘평생교육’은커녕 당장의 교육훈련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기업이라고 좋아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완성체 업체→1차 하청→2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가격인하와 리스크 부담 압력을 종업원에게 전가시킬 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의 인적자원 축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꼭대기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선진국이다. 일본을 앞서는 기업이 적지 않고 주식시장의 성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베이스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오히려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하청기업에는 입찰가 경쟁이,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소사장 제도가 확산됐다. 단기적 안목과 ‘돈’이 관계를 지배한다. 이를 ‘시장경제의 확대’ ‘글로벌 스탠더드의 확립’으로 미화할 수는 없다. 중국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면, 이제는 장기적 투자와 인적자원 개발을 촉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우종원 일본국립 사이타마대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