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7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경영자 300여 명이 모였다. 협상가로 유명한 허브 코언(사진) 미국 전 미시간대 교수에게 한 수 배우려는 사람들이다. 그는 한국능률협회 초청으로 방한해 경영자와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그는 방한 전 한 인터뷰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기업을 ‘만만한 상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협상 능력이 노련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한국 경영자들이 호의를 표현하는 데 인색한 반면 섭섭한 감정을 쉽게 노출함으로써 협상에서 손해 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협상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인데도 한국 정부나 기업들은 협상을 그저 ‘뺏고 뺏기는 대결구도’로만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롯데호텔 강연에서 밝힌 그의 협상 노하우는 의외로 간단했다. “협상을 잘 하려면 아이들을 잘 관찰하라.” 아이들이 무얼 한번 원하면 부모가 말려도 관철시키곤 한다. 엄마한테 떼를 쓰다 통하지 않으면 아빠한테 접근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할아버지·할머니한테 달려가 부모에 ‘압력’을 넣도록 한다. 일종의 연합 전선을 형성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의 강연 내용.
협상을 잘 하려면 내용 못지않게 스타일과 인상이 중요하다. 미국인들이 레이건 대통령을 좋아한 것은 그의 콘텐트가 훌륭해서라기보다는 스타일이 좋았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멋진 풍모가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준 것이다. 비즈니스 협상에선 거래 시작 전에 비공식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한다. 협상 때는 겸손해 보여야 한다. 상대와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실수는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양보해선 안 된다.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이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와 벌인 중동 평화 협상에서 실패한 것은 클린턴이 처음부터 너무 양보한 때문이다. 상대방의 기대 수준을 높여주면 협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그는 다른 모임에서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북측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너무 많이 양보한 것 같다. 북측은 이를 고마워하지 않으며, 향후 협상에서 기대치만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허브 코언 교수=30년 경력의 현역 협상가. 기업의 인수합병은 물론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사태, TWA 여객기 납치사건 등 1970~80년대 세계 주요 테러 사건의 협상을 현장에서 수행했다. 국내에는 『협상의 법칙』이란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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