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캐피털도 벤처정신 미흡”
‘기술경영’ 창시 윌리엄 밀러 스탠퍼드대 교수
‘기술경영’의 창시자로 유명한 윌리엄 밀러( 83·사진) 미국 스탠퍼드대 명예교수가 지난주 내한했다. 산업자원부 주최의 ‘글로벌 기술경영 포럼’에 해외 석학 발표자로 참가했다.
밀러 박사는 지난 25년간 50회 이상 한국을 방문, 기술경영을 전파해 왔다. 카이스트(KAIST)를 비롯한 대덕연구단지와 전국의 많은 기업·대학에 이를 확산한 공로로 2000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한국은 물론 중국·일본도 매년 다니며 자문에 응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과의 인연은.
“1960년대 한국 정부에 ‘과학기술 전문교육기관을 세워야 한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해 카이스트(KAIST) 설립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프레더릭 터만 교수가 스탠퍼드대 은사다. 그 인연으로 KAIST와 한국 기업들을 자주 찾아 기술경영을 전파하게 됐다.”
-한국의 기술경영은 어떤 수준이라고 평가하나.
“한국은 작지만 기술이 매우 풍부해서 흥미로운 나라다. 그러나 산학협동에서는 좀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벤처 캐피털도 미흡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경영자들이 좀 더 과감할 필요가 있다.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해 진취적인 경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경영에선 실패도 중요하다.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한발 더 나아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서다. 실패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한국 경영자들은 왜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할까.
“근현대사에서 전쟁 등 많은 부침을 겪었고, 실패에 따른 ‘사회적 불이익(social penalty)’도 매우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도 모험을 하려 들지 않고, 성공이 확실시되는 안전한 일만 하려 들었던 대공황 직후의 미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결국 모험을 감행한 경영자들과 기술자들이 나와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결국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진취성이다. 한국 경영인들은 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특유의 ‘하면 된다’ 정신(can-do spirit)을 발휘한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매우 보수적이다. 지난 몇 년간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기술경영적인 측면에서 한국을 중국·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풍부한 기술을 아시아의 다른 개발도상국에 기술을 빌려주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중국은 강한 나라이지만 세세한 부분에선 다듬어지지 못한 구석이 많다. 오랜 경제침체기를 겪은 일본은 정부가 규제는 완화하고 지원은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교육에도 매우 중점을 두고 있다. 대만도 정부가 기업을 도와주면서 간섭은 일절 하지 않는다.”
-최근 관심 분야는.
“환경에 관심이 많다. 특히 아내와 함께 매년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치타 서식지를 찾아 야생동물 보호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과 경영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역시 매우 긴급한 문제다.”
전수진 기자
◇기술 경영(Management of Technology : MOT)=밀러 교수가 1980년대 스탠퍼드대에 처음으로 관련 과정을 개설했다. 확보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상업화할지를 연구하는 실용 학문이다. 엔지니어의 경영 마인드를 키우고, 경영자들의 기술 마인드를 깨우칠 목적으로 탄생했다. 과거 미국에서 라디오에 쓰던 진공관 기술을 응용해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이나 각종 의학 장비를 만든 것을 비롯한 현장 적용 사례가 무궁무진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