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과학기술의 공공성 연구자 스스로 중요성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2008년 04월 08일(화)
S&T FOCUS 과학기술은 단순히 경제동력을 얻기 위해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한 과학이어야 한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이 진정성에 얼마나 닿아 있을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과학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 본지에서는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이 같은 담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지면 사정상 ▶과학기술이 갖는 사회적 책임을 공공성 측면에서 살펴보고 ▶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조절 능력의 필요성 ▶그리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과학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과학자로 여겨질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모았다고 했을 때 그 중에서 현재 살아있는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답을 결정하기는 어렵겠지만 대부분의 어림짐작은 적어도 80%는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일까? 20세기 초부터 과학연구를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까지도 과학은 연구로부터 얻을 수 있는 물질적 보상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정적 여유를 가진 ‘신사 과학자(gentleman scientist)’에 의해 연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차피 대학을 제외하고는 과학을 연구해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었다. 이 점은 기술자에게는 해당이 안되겠지만, 내용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현대 기술자에 더 가까운 공학자의 수는 20세기 전까지는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매우 적었다. 그래서인지 19세기까지 과학연구는 과학자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개인적 활동으로 이해되었고, 전형적인 과학자는 모든 사회적, 문화적 구속에서 자유로운 ‘괴짜’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줄 베른의 <지구 속 여행>에 등장하는 리덴브로크 교수가 이러한 과학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결정적인 사실은 20세기 초반 이후의 과학연구에서는 지난 세기 과학자의 모습이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그런 이미지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특히 과학기술의 공공성과 관련되어 두드러진다. 현대 과학연구의 상당 부분은 공공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다. 공공자금은 원칙적으로 다른 곳에 쓰일 수도 있었을 자원이다. 병원을 짓거나, 학교를 짓거나,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데 쓰일 수 있었을 자원을 과학연구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원을 사용하는 과학자들은 당연히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연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모든 과학연구가 직접적으로 어떤 ‘돈이 되는’ 신기술 개발과 연결될 수 있어야만 지원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직간접적으로 공공자원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원하는 주제나 연구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현대 과학기술 연구의 파급효과는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연구결과의 활용 과정에서 공공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공공성의 원칙은 많은 경우 연구의 효율성을 명분으로 훼손되고 있다. 주로 저개발국에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풍토병에 대한 연구보다 선진국에서 단기간에 ‘불편함’을 주는 가벼운 질환에 대한 연구가 훨씬 더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저개발국 사람들은 약품을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 말라리아에 대한 여러 연구에서 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된, ‘모기약이 발라진 모기장’의 보급보다는 ‘모기를 유전적으로 변형시켜 불임화’하려는 첨단 연구가 훨씬 더 주목을 받는다. 최근 각광받는 유전공학 연구와 연계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약초나 자연추출물에 대해 갑자기 ‘특허사용료’를 내라는 통보를 받고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자연물에 대한 물질특허를 폭넓게 해석한 미국 등의 새 특허법에 의해 자연물의 작용기작을 연구한 사람이나 기업이 독점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약품들이 정부지원금으로 개발되고서도, 제약회사에 의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환자들에게 팔리고 있다. 연구결과의 산업화를 촉진시킨다는 명분으로 공공자금의 지원을 받아 연구된 결과에 대해 연구원이나 기업체, 대학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법안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사례들은 현대의 과학연구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공공성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일부의 과학기술 연구자와 정부 관리들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서 일반시민과 힘을 합치고 있다. 인간유전체연구계획(HGP)이 시작될 무렵, 저명한 분자생물학자 왓슨이 주도하여 시작한 ELSI(윤리적 법적 사회적 쟁점)연구는 이후 파급효과가 큰 과학기술에 대해 그것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고 미리 대책을 세우는 관행을 정착시키고 있다. 또한 기술영향평가제도(TA)도 기술개발 기획과 영향평가 결과를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유럽각국에서 시행 중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그 틀과 시행방법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과학기술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연구자 스스로가 이러한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상욱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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