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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서 신발을 제조하는 삼덕통상 문창섭 사장의 말이다. 공단입주기업협의회장인 그는 “입주한 83개 기업은 남측에서 모든 설비와 부자재, 심지어 화장실 화장지까지 조달하기 때문에 중소 협력업체가 8000개에 이를 것”이라며 “공단 기업인들이 냉랭해진 남북 관계로 심리가 위축돼 있으니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3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고 밝힌 이후 당국 간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개성 남북경협사무소의 남측 직원을 철수시켰고, 6월엔 하루 21차례 이뤄지던 공단 통행 횟수도 15회로 줄였다.
2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는 남측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 사례를 나열하며 “계속되면 개성공단 사업과 개성 관광에 엄중한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일 대북 인권운동단체가 선전 전단을 살포한 데 대해 개성공단 입주기업협의회 측이 우려의 성명을 낸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대북 퍼주기 사업’ ‘사양 중소기업에 대한 특혜’ 등 일각의 비판 속에서 4년간 성장해 온 개성공단에 대한 평가는 현재로선 긍정적이다. 정치권도 여야의 시각차가 별로 없다.
남한 기업이 북한 노동자 3만4000명을 고용해 남북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세웠다는 점, 정부·기업이 5억 달러를 투자해 총 4억5000만 달러어치를 생산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해 개성을 드나드는 남측 차량도 하루 300여 대다. 4년 전 허허벌판이었던 공단에 발을 디딘 문 사장은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성과와 보람이 있다”고 했다. “말을 걸어도 대답 없던 북측 여성 노동자들이 이젠 함께 회의를 할 만큼 변했다”며 “초창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천지개벽한 것”이라고 했다.
공단 미래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을 제외하면 현재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최대 현안은 노동력 확보다. 10월 현재 1만여 명이, 50개 공장이 추가 완공되는 연말에는 2만 명이 부족하게 된다. 특히 우리 기업은 20~30대 여성 인력을 요구하는데 개성 시내에선 한계에 다다랐다. 최근엔 40대 여성들도 고용하고 있다.
개성인근 지역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말 남측은 북측에 ‘2008년 상반기 중 근로자들이 묵을 기숙사를 지어준다’고 약속했고 북측은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그런데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발이 묶인 것이다.
최근 공장을 완공한 2~3개 기업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지난 7월 입주한 신사복 생산업체 ‘에스엔지’의 정기섭 대표는 “현재 필요 인력의 4분의 1인 424명만 받았다”며 “금전적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측은 남측 정부가 기숙사 건설을 하겠다고 천명만 하면 해주·사리원의 인력을 데려다 학교 등에 임시로 수용할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면서 우리 정부의 실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그러나 통일부 관계자는 “기숙사를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지을지, 누가 어떻게 운영할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당국 간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력 수송을 위해 기존의 철도를 보수하는 등의 대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측의 당국 간 대화 요구에 북은 대답이 없다.
문 사장은 “공단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0년에는 450여 기업에 10만여 인력이 추가 공급돼야 한다”며 “이 때문에 기숙사 문제는 기업뿐 아니라 개성공단의 미래를 위해서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남측은 일단 비상 계획을 세워놨다. 개성 근교로부터 추가 노동력을 수송하기 위해 연말까지 통근버스 100대를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문제는 진입 도로가 7㎞에 불과해 도로 정비가 현안이 됐다.
공단 인력이 미혼 여성에서 기혼 여성으로 확대되면서 북측은 탁아소 건립을 요청했다. 정부 관계자는 “건립과 운영 문제가 복잡하지 않은 탁아소는 당국 대화 없이 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은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경구가 딱 들어맞는 장소로 꼽힌다. 방문한 뒤엔 부정적 인식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통일 시험대’로 바뀌기 때문이다. 2006년 12월 방문한 짐 맥도모트(민주당) 미 하원의원은 “개성공단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직접 방문해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론자는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연장 근무를 포함해 월 평균 75달러에 불과하고, 특히 그중 일부를 북한 정부에 내기 때문에 ‘주민 착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단과 시내를 오가는 버스를 운전해 온 남측의 이모씨는 “저임금이라고 하지만 이곳 주민에겐 대단한 직장이고, 여성과 아이들의 얼굴·옷차림·거리 모습이 4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