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일보] 독일 지멘스의 한국 투자

FERRIMAN 2008. 10. 31. 23:14

기사 입력시간 : 2008-10-30 오후 8:04:07
“하이테크사업 하기엔 딱” 독일 지멘스의 한국 사랑
손재주·근성·기술에 반해 미국 초음파사업 옮겨 와
 ‘하이테크 산업의 투자처로 한국만 한 곳이 없다’.

유럽 최대 전기전자 업체인 독일의 지멘스가 내린 결론이다. 지멘스는 지난달 말 미국 초음파사업부의 절반 이상을 한국으로 옮겼다. 지멘스 한국법인의 조셉 마일링거 대표는 “근성 있는 연구 인력과 손재주가 뛰어난 생산 인력, 기술력이 뛰어난 벤처형 협력업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한국뿐이라는 판단을 독일 본사에서 했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에 있는 테크노파크 산업단지에 지난달 완공된 지멘스의 메디컬초음파진단기기 생산공장 및 연구소. 28일 동대구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이곳은 공장이라기보다는 첨단 연구소처럼 주변이 깔끔했다.

초음파진단기기인 애큐나브를 만드는 공장(클린룸)은 80여 명의 직원이 3교대로 근무한다. 흰 가운을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독을 한 뒤 들어갈 수 있다.

애큐나브는 심장이나 폐 등을 수술할 때 대정맥을 통해 신체 안으로 넣어 수술 부위를 찍어 모니터로 전송해 주는 의료기기다. 개당 80만원 정도 하는 이 기기를 연간 3만여 개씩 만든다.

이 회사 박수만 전무는 “초음파의료기기는 수작업으로 만든다. 생명과 직결되는 기기라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사업장에서도 공정이 어렵다고 고개를 내저었지만 뛰어난 손기술이 있는 우리나라 인재들이 어렵지 않게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멘스의 클라우스 함부헨 초음파사업부 사장은 지난달 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포항 연구소와 생산공장에 앞으로 500억원 이상을 더 투자하겠다. 한국을 ‘세계 초음파의료기기 사업 허브’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지멘스는 2002년 처음으로 한국 내에서 하이테크 산업인 초음파진단기기에 투자했다. 벤처업체 프로소닉에 지분을 참여하는 형식이었다. 이후 이곳에서 개발된 뛰어난 제품들을 보고 한국 내 투자를 계속 늘렸다고 한다.

박 전무는 “미국 사업장에서도 못하는 뛰어난 연구 실적이 한국 공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2003년 시작돼 지난해 초 개발이 완료된 초소형 초음파진단기기(P10)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 전무는 “성인 몸체만 한 초음파진료기를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로 줄인 제품의 개발을 국내 개발진이 주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쟁 업체는 상상만 했지 기술적으로 제품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멘스는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에 근거지를 뒀던 초음파사업부를 한국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내에 메디컬초음파사업부를 출범시켰고, 지난달 말에는 포항에 생산공장과 연구소를 준공한 것. 현재는 미국에 있던 지멘스 초음파사업부 전체의 절반 이상이 국내로 이전된 상태다. 또 지난해 말부터 지멘스 초음파사업부의 전체 매출 중 국내 비중이 50%를 상회하고 있다.

조셉 마일링거 사장은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 또는 중국이나 인도와 견줄 수 없는 연구력·생산 인력·협력업체 등 3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기업들은 투자가 어렵다고 하지만 글로벌 업체들은 한국만큼 경쟁력을 고루 갖춘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항=장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