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과학계의 수장이었던 백발의 장관이 돌아왔다. 한때 ‘과학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대권에 도전했던 이상희 전 국회의원이 느닷없이 국립과천과학관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국립과천과학관장이나 국립중앙과학관장은 교과부 국장들이 2급 승진을 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산하기관 자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자리를 한때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냈던 이상희 씨가 맡았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지난 10월 8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실에서 임명장을 받은 이상희 신임관장은 “열심히 하라는 과학계의 격려 아니겠느냐”며 “유권자에게 표를 부탁하던 절박한 심정으로 국민들에게 과학 마인드를 부탁 하겠다”고 밝혔다.
Q. ‘장관’에서 ‘관장’으로 직함의 글자가 앞뒤로 바뀌었네요. 먼저 취임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직접 공모에 응모한 것은 아니시죠?
네. 솔직히 개인적으로 제가 이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죠. 8월인가 쿠바에 가 있을 때 갑자기 국제전화를 받았습니다. 과천과학관장 추천위원회에서 나를 지목하고 맡아달라고 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택도 없는 소리’라며 웃었습니다. 젊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데 제가 이 나이에 그 자리를 맡겠습니까.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그 이후에 몇몇 원로들이 자꾸 권유를 하는 겁니다. 수도권에 있는 유일한 과학관으로 상징성도 있고 과학도 잘 알고 경영도 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어른들도(과총 회장, 한림원장 등 과학계 원로들이 관장직을 맡아달라는 이메일을 썼다) 다 생각이 있는데 그렇게 권유하는 것을 보니 뿌리칠 수가 없겠더라고요.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라는 게 아니라 과학계를 위해 봉사하라고 하는 것이니 나중에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Q. 평소에 과학 대중화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소감은 어떠십니까?
제가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갔었지요. 그때 이회창 후보를 비롯해 9명이 나와서 ‘구룡’이라고 시끄러웠는데 저는 그때 ‘과학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사실 같은 정치권에서도 “저 사람 지금 뭐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과학기술로 우리 국민 전체가 무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을 어렵고 딱딱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은 미래적, 창의적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철학이고, 또 과학을 현실에 응용하는 것이 기술입니다. 최근에 중국을 보면서 상당히 무서움을 느낍니다. 중국은 ‘과교흥국(과학과 교육으로 나라를 살린다)’에서 ‘과기흥국(과학과 기술로 나라를 살린다)’으로 바꿨습니다. 중국의 13억 인구를, 사실 주민등록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합하면 16억 인구를 그냥 머리수로만 보면 못사는 나라죠. 저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느냐가 고민이지만, 과학기술의 방식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무장을 하면 16억 인구가 모두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자원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지금부터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합니다. 솔직히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도 했고, 일제시대 때는 나라 잃고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하기도 했는데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국민들이 과학 마인드로 무장할 수 있도록 봉사를 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Q. 주변에서 반대를 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사람의 일자리 하나 뺏은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이 자리를 맡은 것에 대해) 부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미래지향적, 합리적, 창의적 사고를 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면 그동안 살아왔던 것을 국가사회에 반납하고 돌아가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제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알게 된 소중한 경험과 지혜들을 이제 반납해야죠.
Q. 과학대중화를 위해 과천과학관에서 어떤 일을 하실 계획입니까?
미국 쪽 영화관계 전문가와 통화를 하면서 과학관을 맡아 대중화를 하려면 제일 쉬운 길은 영화를 하나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든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영화가 히트를 쳤는데 ‘과학관이 살아있다’를 만들면 히트치지 않을까요? 컴퓨터그래픽이 많이 들어가야 하니까 우리가 독자적으로 만들기는 어렵고 미국과 공동으로 제작해야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시나리오, 콘텐츠를 제공해야겠죠. 몇몇 영화관계자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쉬운데 ‘과학관이 살아있다’는 만들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스토리가 별로 안 나온다 이거죠. 그래서 SF영화처럼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는데 과학관에 있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공격하는 것으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내놨더니 그것은 관심 있어 합디다. 제가 과거부터 영화 ‘쥬라기공원’ 한편이 자동차 150만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얘기해왔습니다. 그런 방향을 과학관과 접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과학관을 위한 새로운 계획은 없으십니까?
천천히 생각해봐야할 일이지만 아이디어 단계로 주차장을 지하로 넣는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천과학관이 7만평인데 지상에 주차장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죠. 1천200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인데 솔직히 그 금싸라기 땅을 주차시설로 사용하는 것은 아깝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실내 전시관뿐 아니라 실외의 공간도 과학 놀이공간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주차장을 지하로 내려야하는데 이미 다 지어진 건물인데 쉬운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건설업체와 접촉해보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하 주차장의 벽면과 기둥을 기업의 광고판으로 만들어서 광고를 유치하거나 기업이 과학시설에 투자하면 세금 등 감면 혜택을 주는 방법 등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Q. 해외의 과학관과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지난 추석 연휴에 박물관이 100개나 있다는 러시아의 도시, 세인트 페테르부르크에 갔습니다. 에르마타쥐 박물관이 어마어마한 규모인데요, 학생증만 갖고 있으면 관람료가 공짜입니다. 우리 국내는 피카소 그림 서너점만 있어도 관람료를 2만원씩 받는데 에르미타쥐 박물관과 비교하면 정말 놀랠 일이죠. 그것은 국가가 교육비로 투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솔직히 요즘 이공계에 우수 인재가 안 몰린다고 걱정하는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박사학위를 받기위해 몇 년 동안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고생해서 겨우 받았는데 변리사 공부는 10개월 만에 붙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알아주기는 이공계 박사보다 변리사가 더 낫다고 보죠. 나이 들어 이공계 출신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으니 안 갈려고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선진국의 경우 돈과 명예보다는 내가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풍요롭겠다고 생각해서 이공계를 택합니다. 우리나라 과학관도 청소년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마인드를 길러줘서 미래의 비전을 갖도록 해줘야 합니다.
Q.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와도 많은 협력을 해야겠습니다.
네. 교과부와 많은 협력을 하면서 머리를 맞대야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예산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설들을 사용할만한 소프트웨어, 인재들이 있어야하죠. 세계 5위급의 하드웨어를 갖고 있다면 세계 5위급의 인력이 있어야하는데 이 부분은 중요합니다.
사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국민들의 의식 구조를 높이는 쪽으로 노력하지 않습니까? 과학관이야말로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길러주는 곳이 되어야 하며 과학분야에서 국민들의 의식을 높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집안에서도 자식을 교육시킬 때 교육비에 많이 투자하는 것처럼 국회 측에서 과학쪽 예산을 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평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생활을 좀 소개해주시죠.
대한변리사회 회장, 세계사회체육연맹(TAFISA) 회장, 가천의과학대 석좌교수 등을 맡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몇 개는 정리하고 또 필요한 부분은 더 열심히 해야겠죠. 제가 이렇게 자꾸 새로운 발상을 하니까 이상하고 희한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저는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국회의원을 그만둔 다음에도 매일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할 정도로 바빴죠. 하지만 일주일에 2∼3번은 꼭 지하철을 타고, 손자들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즐깁니다. 지난번 제 칠순잔치도 인터넷 UCC로 벌였는데 많은 네티즌들이 찾아와주더군요. 항상 즐겁게, 또 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ejung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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