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령화와 시니어의 삶의 조건
관리자2016.11.16 12:20:52 부제목: [기획 연재] 미국의 시니어 정책 ② 필자명: 정건화 필자소개: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사회혁신을 통한 지역사회 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행정(지방정부)-대학간 협력을 위한 크게 작은 실험들에 참여하고 있고 최근에는 고령화와 베이비 부머의 은퇴 후 삶과 사회공헌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한반도 경제론』, 『노무현 시대의 좌절』, 『한국사회의 쟁점과 전망』, 『북한의 노동』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인구폭탄과 미국
1968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독일과학자 폴 얼리히는 인구폭발(population explosion)에 따른 인류의 위기를 우려하는 ‘인구폭탄(The Population Bomb)’이라는 책을 출판한 바 있다. 아직도 지구 상의 많은 나라에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예언은 빗나간 예언의 대표적 사례로 인용된다. 대신 지구 상의 많은 나라들은 전혀 성격이 다른 인구문제로 인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 인구문제는 자폭 혹은 내파(內破: implosion)의 위험을 가진 인구폭탄이라 할 수 있다. 내파형 인구폭탄의 핵심은 출산률 저하에 따른 인구정체(혹은 감소)와 고령화문제로서 그 위협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나라는 일본과 유럽 등이다. 특히 1950년대는 가장 젊은 나라에 속했던 일본은 당시 중위값 연령(median age)이 22세였지만 2015년 현재는 40세를 넘겼고 2025년에는 50세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일 것이고 그 뒤를 이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홍콩, 대만, 싱가폴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내파형 인구폭탄의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미국은 유럽과 달리 다음 세기에도 중위값 연령이 50세를 넘긴 일본, 유럽과 달리 중위값 연령은 39세의 젋은 인구구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미국으로 젊은 이민자들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고 이들을 포함, 젊은 세대의 출산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시행된 미국 대선에서 이민에 대한 강력하고 적대적인 규제를 내세운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어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지만 실은 미국은 많은 면에서 이민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회이다. 이민 인력의 공급지 역할을 하느라 멕시코나 주변의 중남미 나라들은 빠른 속도로 잉여 청년노동력의 감소를 겪으며 모두 미국보다 고령사회가 되었다. 한 분석에 따르면 멕시코로부터의 이민도 2020년대가 되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주변 나라들에서 미국으로의 젊은 이민인구 유입이 정체되는 날 미국사회에서도 내파형 시한폭탄이 작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PBS NOVA, The Impact of Aging Populations, 2004년 4월). 미국이민자 규모는 2060년까지 매년 150만으로 정점에 달한 후 감소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민자의 대부분은 경제활동인구(working-age adults)이다.(Population Reference Bureau, Population Bulletin Vol. 70, No.2 Dec. 2015: 16).
미국의 고령화 현황- 국제비교
인구문제에 관한 한 '고요의 섬(an Island of Tranquility)'으로 불리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미국은 고령화가 깊숙이 진행된 사회이다. 미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많고 85세 이상 초고령인구로는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또 베이비 부머의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며 이들의 고령화와 은퇴가 이미 시작되어 현재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만명 이상이 65세 생일을 맞고 있고 이 상황은 앞으로 20년간 지속될 예정이다.
미국의 고령인구에 대한 정책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노년층의 평균적인 생활여건은 세계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연금, 노인빈곤률, 노인의 상대복지수준, 1인당 국민소득), 건강(노인의 기대수명, 건강수명, 심리적 만족도), 능력(노인고용률, 교육수준), 환경(사회적 연계, 물리적 안전, 시민사회 자유도, 공공교통에의 접근) 등 4개 영역에서 총 13개 지표를 분석한 2015년 글로벌 고령관련지수 보고서 (Global Age Watch Index 2015)에 따르면 미국의 노년층의 삶의 질은 비교대상 96개국 중에서 9위를 차지한다. 또한 OECD국가들을 대상으로 삶의 질을 평가한 국가-연령층별 비교 그래프를 보면(그림 1), 미국은 50세 이상 장-노년층의 삶에 대한 주관적 평가(만족)에서 OECD국가 평균보다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미국내 30-40대 성인 연령세대에 비해서도 높게 나타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장-노년층의 삶에 대한 만족은 10-20대나 30-40대에 비해 현저히 낮음이 주목된다.)
[그림1] 연령층별 삶에 대한 주관적 평가 (10점 만점, 2006-2014년기간 중 평균)
삶에 대한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적 생활여건이다. 신체조건이나 노동시장 상황등을 고려할 때 고령일수록 직접적인 근로소득보다 사회보장이나 개인연금, 가족의 지원 등 다양한 수입경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노년층의 생계수단을 구성하는 수입의 조달방식에서 고령화에 대한 제도적 대응과 사회 시스템이 갖춰진 경우와 사회적 보호없이 개인의 경제활동이나 가족 등 사적 지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점이다.
전자가 서구 산업국가들이라면 후자는 많은 개발도상국의 경우이다. 선진국에서는 정부지원이 39%를 차지하여 근로소득(40%)과 맞먹는 비중을 차지하고 개인자산은 25% 수준이다. 그리고 70세 이상이 되면 공공정책을 통한 지원이 67%로 그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개인자산 21%로 보완적 역할을 하는 데 머물고 있다. 반면 걔발도상국은 주로 근로소득(56%)과 개인자산(62%), 사적(가족 등) 지원(28%)이 주된 재정충당 경로이고 70세가 넘으면 근로소득의 비중은 현저하게 줄어들지만 여전히 자산소득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자산소득의 노후 생활의 중요한 원천이 되는 경우 노년층 내에서의 빈부격차는 매우 크게 될 것임도 자명하다 (그림 2). 한편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은퇴연령이 높아져 60대 노년층의 직접적인 경제활동비율이 높은 것이 확인되는데, 미국은 1960년대부터 노년층의 경제활동 참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90년대 이후 다시 상승하여 U자곡선 모양을 띈다 (그림 3).
[그림 2] 선진국-개발도상국 간 노년층의 소비생활 재원조달 경로비교(2000년대)
[그림 3] 미국 노년층(65세 이상)의 경제활동 참가비율 추이(1964-2014년. 단위 %)
미국 노년층의 경제생활
미국의 노년층(65세이상)의 가구소득 구성을 보면 1960년대부터 소셜시큐리티(social security)라 불리는 공적 퇴직연금이 대략 1/3을 차지하고 개인연금 비중은 1960년대 9퍼센트 수준에서 꾸준히 늘어나서 1990년 18퍼센트로 두 배가 된 이후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개인근로소득을 통한 수입비중도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의 증가를 반영해서 늘어나고 있고 자산수입(이자, 배당, 임대수입 등)은 1980-90년대에는 제법 높은 수준이다가 2014년 현재 9퍼센트 수준이다. 소득계층별로 비교할 때 주목되는 점은 저소득층의 경우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압도적으로 공적연금(소셜시큐리티)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다 (그림 4). 이는 사회보장제도가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정책수단임을 의미한다.
[그림 4] 65세 이상 노년층 가구소득의 구성비율(2014년)
미국의 노년층의 생활과 의식
이하에서는 미국 노년층의 생활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최근 고령 관련 서베이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2015년 시행된 이 조사는 노년층 당사자(60세 이상 1,650명)에 대한 전화인터뷰 조사와 함께 고령 지원 분야 전문가(고령자 정책, 금융, 의료 분야 전문가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비교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우선 고령화에 따른 가장 중요(심각)한 문제로 당사자그룹은 '육체적 건강 유지', '기억력 감퇴', '정신적 건강 유지'의 순서로 응답했고 전문가그룹은 안전과 보호(노인대상 금융사기 등)와 주거안정, 기억력 감퇴의 순으로 응답했다.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공통적으로 규칙적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을 응답하면서 당사자들은 '긍정적 태도', 특히 전문가들은 '적극적 사회활동'을 강조하였다.
노후대비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당사자들의 긍정적 응답(42 퍼센트)에 비해 전문가들의 응답은 현저히 낮아서(10퍼센트), 노년을 맞는 당사자들이 실제 노년이 직면하게 될 문제들에 대한 이해와 대비가 부족한 듯 보인다. 노후의 안정적 생활을 위한 준비방편으로 공통적으로 '본인의 저축'과 '정부예산을 통한 지원'을 들면서 당사자는 '절약과 검소한 생활', '공공요금에 대한 시니어 디스카운트 확대'를 제시했고 전문가그룹은 주거비 절감과 퇴직연령 늦추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노년층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과 역할에 대한 질문에서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당사자그룹에서 47%, 전문가그룹에서 37%로 나타나 고령화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점이 확인되지만 예상보다는 긍정적 응답률이 높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같은 질문을 하는 경우 긍정적 응답률이 어느 정도일까에 대한 긍금증이 생긴다).
주목되어야 할 설문결과는 주거에 대한 것이다. 응답자의 58%가 최근 20년 이상 현재 주거지에 거주하고 있고, 또 75%는 현재 거주지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62%가 현재 거주하는 주거지의 수리와 개선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응답하였다. 주거여건은 생활반경이 제한되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노년층에게는 삶의 질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변수이다. 여생을 자신의 살아온 공간, 살고 있는 공간에 머물면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노년에게는 축복에 가까운 혜택일 것이다 (그림 5). 고령대응정책에서 반드시 깊이 새겨져야 할 내용이고, 미국의 백악관 고령화회의(2015년)에서 가장 주목을 끈 주제도 돌봄(care-giving), 재가 노인복지 서비스에 대한 물적, 인적 인프라 구축과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에 대한 것이었다.
[그림 5] 2015년 미국 고령화 서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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