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일보] 금융시장 강타한 '검은 월요일' 왜?

FERRIMAN 2008. 9. 2. 10:42

기사 입력시간 : 2008-09-01 오후 7:24:10
[뉴스 분석] 금융시장 강타한 '검은 월요일' 왜
경기침체에 기업 자금위기설이 불 질러

1일 증시 급락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주요 증권사들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코스피지수 1400대 초반을 단기 저점으로 봤다. ‘1400이 깨질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주가가 4% 넘게 곤두박질하자 이런 전망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셈이 됐다. 곧 1300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이란 비관론이 쏟아졌다. 1200대 후반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지금 바닥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증시 약세는 넓게 보면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금융위기와 세계 경제 동반 침체로 인한 기업 실적 악화 우려가 원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국내 증시 급락을 설명하기는 좀 부족하다. 1110원대로 치고 올라간 원-달러 환율이 또 다른 주범이다. 당장 기름값 부담이 큰 대한항공이 1일 하한가로 추락하는 등 환율 민감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심리적 불안감도 크다. 주식·채권·외환시장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외환위기 때를 떠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 서명석 리서치센터장은 “정부는 외환위기 때와는 전혀 다르다고 밝히고 있지만 진행 양상이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의 위기설도 불을 질렀다. 금호그룹이 유동성 위기설로 시달린 데 이어 두산그룹의 자금 압박설도 번졌다. 두산·두산인프라코어는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코오롱그룹도 코오롱건설의 유동성 위기설이 나오며 주요 계열사가 하한가로 내려앉았다.

전문가들은 일단 이달 중순이 지나봐야 반등 여부를 얘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정보파트장은 “일단 현재로선 관망 이외의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심리적 저지선 뚫렸다 …'달러 사자' 몰려

1일 서울 외환시장은 ‘혼란’스러웠다. 원-달러 환율 1100원대가 힘없이 무너졌다.

“심리적인 저지선이 한번 뚫리자 달러를 사자는 수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고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김두현 차장(딜러)은 설명했다. 수입대금 결제를 위해 달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과 국내에서 주식을 판 외국인들의 달러 송금 수요가 몰렸다. 그러나 달러를 시장에 풀어야 할 수출업체들은 환전을 늦추고 외화예금에 넣어두는 쪽을 선호했다.

여기에다 지난달 무역수지가 32억29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역외 시장에서 달러를 사겠다는 수요가 더 강해졌다. 무역수지 적자는 국내 달러 부족을 부추기게 되고, 이는 환율 상승으로 연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이 장 막판 구두 개입에 나서면서 그나마 상승 폭을 줄였다. 현석원 현대경제연구원 금융경제실장은 “경상수지도 악화하고 외국인의 국내 주식 팔기도 계속되고 있어 달러와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상황”이라며 “단기간 내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한국 정부가 환율 방어에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싱가포르 픽텟자산운용의 위밍팅 아시아채권 담당은 “원화를 내다 팔고 있다”며 “외환보유액 감소가 한국은행의 영향력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7월 외환보유액은 2475억 달러로 지난해 말보다 147억 달러 감소했다. 그러나 홍콩 HSBC의 외환전략가인 리처드 옛셍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해 선물시장 등에서 437억 달러를 소진했다”고 주장했다. 애버딘자산운용 싱가포르지점의 앤서니 마이클 채권담당 책임자는 “원-달러 환율은 앞으로 1년간 12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원배 기자




유가·환율 불안에 국고채 금리도 들썩

 

국제 유가와 채권시장 불안도 심상찮다. 1일의 오름폭은 크지 않았지만 언제든 급등해 금융시장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상황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날 채권 금리가 오른 것(채권 가격 하락)은 환율 상승과 맞물려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품의 가격이 올라 국내 물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 채권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게 된다.

동양투신운용 류진호 채권운용팀장은 “8월 소비자 물가가 예상보다 덜 오른 것으로 나타났지만 채권시장은 환율 급등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며 “환율이 계속 오르거나 유가가 다시 상승하면 채권 금리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고채 3년물 등 장기 채권의 금리가 오른 반면 3개월 만기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변동이 없었다. 한화증권 신민식 채권영업팀장은 “장기 채권 금리가 오르면 은행들이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CD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이 되면 CD 금리도 상승하게 된다”고 말했다. CD 금리가 오르면 여기에 연동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따라 올라 대출을 받은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난다.

국제 유가는 허리케인 구스타프의 움직임이 변수다. 현재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 강제 대피령이 내려지는 등 비상이 걸린 가운데 멕시코만 인근의 석유 생산 시설이 대부분 가동을 중단했다. 한국석유공사 구자권 해외조사팀장은 “구스타프가 2005년 카트리나 정도의 피해를 주면 유가가 다시 급등할 수 있다”며 “지금으로선 피해 규모나 이에 따른 유가 상승 폭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